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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虛 笑
    세상사는 이야기 2011. 2. 19. 12:38

    마누라, 표정관리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무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허허로운 웃음이라고 하자.

    아침의 그 활달한 기세는 게눈 감추듯 어디로 갔는가.

     

    뭔가 떨어지는 소리.

    아침밥을 먹다가 쳐다보니,

    마누라의 의아스런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무슨 일이고?

    리모컨 밧데리 뚜껑이 저-기 장식장 밑으로 들어가서...

     

    거실에서 훌라호프를 하면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만 리모컨을 떨어뜨렸고,

    그 충격에 밧데리 뚜껑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어이구, 바보같이. 좀 잘 하지.

     

    이 한마디가 마누라의 심경을 건드린 것이다.

    '바보'라고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렇게 시작한 말다툼이 심해져 갔다.

    급기야 한마디 더 붙인 말이 마누라의 부아를 치솟게 한 모양이다.

    '못된 일' 운운한 것.

    딴에는 훌라호프를 하다 리모컨을 떨어뜨린 게

    '잘못된 일'이라는 뜻을 말한다는 게 '못된 일'로 표현했는데,

    그 게 묘하게 반응한 모양이다.

    '못된 일'이라는 말로 한참을 다퉜다.

    그 반대 말이 '잘된 일'이냐부터 '착한 일'로 이어지고...

    나의 뜻이 그렇게 왜곡되게 전해질지는 몰랐다.

    어떻게해서든 수습을 하자.

    해서 마누라더러 뚜껑을 찾아보라고 했다.

    마누라는 다시 발끈한다. 장식장 밑으로 들어간 것을 어떻게 꺼내느냐.

    화장실 변기 뚫는 철사줄을 갖고 나와 장식장 밑을 훑었다.

    켜켜이 쌓인 먼지만 나왔다. 그 사이 출근시간은 늦어지고.

    출근하면서 마누라에게 말했다.

    뚜껑을 장식장 밑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주변을 다시한번 잘 찾아 봐라.

    그 말이 마누라를 다시 화나게 한 모양이다.

    장식장 밑으로 들어간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나를 그런 식으로 바보 취급하느냐 하는 투로 쏘아 붙인다.

    할 말이 없다.

    그러면 뚜껑 뒤를 테이프로 잘 감아 놓아라.

    이 말만 던지고 나는 집을 나섰다.

     

    퇴근 길, 마음이 뒤숭숭하다.

    아무런 일도 아닌 것을 갖고

    마누라 속을 뒤집어 놨으니 어찌할 것인가.

    집을 들어서니 아무도 없다. 텅 빈 집.

    마누라 들어 올 시간이 안 된줄 알지만,

    그래도 생경할 정도로 허허롭다.

    옷도 안 벗고 소파 위에 털썩 앉았다.

    곁에 그 문제의 리모컨이 있다. 쳐다보기도 싫다.

    리모컨은 변해있을 것이다.

    밧데리 케이스 부분을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리모컨을 들었다.

    어라, 그런데 그 게 아니다.

    밧데리 케이스에 뚜껑이 얌전히 꽂혀 있다.

    이 게 어찌된 일인가. 마누라에게 전화해볼 수도 없고.

    피-익 웃음이 나왔다. 내 말이 맞았을 것이다.

    뚜껑은 떨어져 나와 거실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내가 출근하고 마누라는 그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래서 얌전하게 꽂아놓았을 것이고...

    갑자기 미더덕 된장찌게 냄새가 느껴졌다.

    그제서야 그 냄새가 내 코에 들어온 것인가.

    부엌 싱크대 위에 내가 좋아하는

    김치 넣고 끓인 미더덕 된장찌게가 만들어져 있었다.

     

    마누라가 조용하게 들어 왔다.

     

    그 거(뚜껑) 어디 있더노?

     

    마누라는 말이 없다. 그냥 다소곳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뒤따라가 다시 물었다.

     

    어디 있기는요. 뭐...

     

    표정을 관리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웃고 있다. 虛笑다. 허허로운 웃음.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마디 해야 하는데, 어떡하나.

    버릇처럼 또 '바보 같이,'

    이 말은 죽어도 하지 말자. 

    죽어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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