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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사는 이야기 2019. 4. 15. 07:41

    수색 쪽으로 해서 서울로 나가는 항공대 부근이라고 했다. 우연히 얼마 전에 만난, 옛 출입처 동료가 한번 왔으면 하고 가르쳐 준 자기 농장이라고 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그런 것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어제 토요일 아침에 또 전화다. 지금 매화가 한창이다. 매화 아래서 이런 저런 얘기도 좀 나누고... 일산 호수공원을 걸으며 어떡할까 생각하다 어차피 집으로 가는 방향이니 일단 버스를 탄 후 마음을 정하자 했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또 전화를 받았다. 안 갈 도리가 없다.

    화도교 정류장에서 내려 온 길을 약간 거슬러 가면 SK주유소가 나오고, 바로 그 뒤 매화나무 밭이라고 했다. 그 쪽 동네는 처음 걸어본다. 하기야 가볼 일이 없는 곳이니, 어쩌다 버스를 타고 지나치면서 보던 동네다. 화물트럭 터미널 같은 게 있어서 좀 시끄러웠다. 대충 얼기설기로 엮어 담장만 쳐 놓은 듯 한 터미널엔 사나운 개가 우르렁대고 있었다. 길을 한 차례 잘못 들었다가 다시 나와 용케 그 사람의 농원으로 갔다. 과연 말대로 매화가 무성했다. 주로 홍매화였고, 청매화도 가끔씩 눈에 띄었다.

    농원 초입 컨테이너 박스가 말하자면 그 사람의 거처였는데, 좀 엉성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은 마두동에 있고, 이곳 농원은 자기 혼자 나와 물도 주고 하기에 그렇게 썩 갖춰놓고 살 필요가 없다고 했다. 70 가까운 나이에 무슨 매화농원이냐고 했더니 씩 웃는다. 매화농원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인가. 내 생각이 맞았다. 그 사람의 농원은 8백평인데, 곧 정부에 의해 수용될 땅이라고 했다.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계속 땅 이야기만 한다. 농원 바로 앞에 서울-문간 간 고속도로가 건설 중에 있는데 그걸 기다려 왔다는 투다. 땅은 국회출입 기자 시절인 1990년대 초 모 의원 보좌관을 통해 샀다고 했다. 거의 2천평 가까운 땅을 농협 융자를 보태 2천5백만 원에 샀는데, 그 동안 이런 저런 거래로 처분하고 이제 매화나무 2백그루가 심겨진 8백평만 남았다고 했다. '이런 저런 거래'로 솔깃한 이문을 남겼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금 시세가 5백 이상이라고 했다. 얼추 계산해 보면 40억이다. 땅 한 귀때기 없는 주제로서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한참 얘기를 하다 밥을 먹자고 했다. 둘러보니 밥 먹을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가서 먹자고 했더니 굳이 자기가 장만한 밥을 먹으라고 한다. 그러더니 살을 전기밥솥에 안치고 집에서 가져왔다는 찌게꺼리를 데운다. 컨터이너 보다는 매화 아래서 먹는 게 어떻냐며 매화나무 아래 자리를 편다. 송구한 마음이기도 했지만, 나와 이 사람이 과연 이 정도로까지 가까운 처지들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밥을 맛있게 먹었다. 커피는 다시 컨테이너 안에서 마셨다. 그리고 또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웠다. 땅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원 말고도 평택에 몇 백평의 땅도 있다고 했다. 내 질문은 좀 엉뚱했다. 나이 70줄이 가까웠는데, 그 많은 땅을 어떻게 할 요량인가. 그 사람 말이 정답일 것이다. 나 아니면 자식들, 자식들 아니면 손주, 고손주들까지 잘 살아지요.

    농원에서 걸어 나와 집으로 오는데 마음이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 사람이 갖고있는 매화가 만발한 땅과 그 가치로서 환산한 부가 부러워서가 아니다. 나와 그 사람의 현실성에 대한 괴리감이다. 물론 그 괴리감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의 무능력함과 맞닿아있는 것이고. 문득 카톡 메시지 신호음이 들렸다. 아침에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에 오를 것이라는 아내의 메시지가 생각났다. 열어보니 아내가 사진을 보내왔다. 융프라우에서 활짝 웃으며 손을 들고있는 사진이다. 아내의 그 웃음에 나는 만족해 살아간다고 하자. 이 또한 무능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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