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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嘉會洞의 추억
    추억 속으로 2010. 9. 27. 07:10

    어쩌다 '1박2일'을 보는데 가회동이 나온다.

    어떤 장면에선가 예전 그 곳에서 살던 집 부근이 나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오 아무개라는 분이 주인이었던 하숙집으로 내려가는 계단.

    지금은 '돌계단'으로 명명돼 있었는데, 예전의 자취는 찾아볼 수가 없다.

    가회동은 총각시절, 그러니까 1977년부터 79년까지 살던 곳이다.

    그래서 가회동에는 추억이 좀 있다.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 하나.

     

     

     

    1978년 말 쯤이었을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하숙을 청산하려 했다.

    방이 필요했다. 전세내지는 월셋방으로.

    수중에 80만원이 있었다.

    그 돈으로 가회동에서 전셋방을 얻을 수 있을까.

    어찌됐던 동네 복덕방에 문의를 했다.

    당연히 그 돈으론 어렵다는 것이다.

    월세를 좀 내면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최소한 200만원의 전세금은 있어야 한다는 것.

    복덕방 주인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여인이 들어 온다.

    주인 할아버지가 나하고 얘기 중이니까, 옆에 그냥 앉아있다.

    월삯을 좀 후하게 하겠다. 그러면 어찌 안 되겠느냐.

    할아버지는 막무가내다. 아주머니는 곁에서 우리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하는 수가 없다. 다른 복덕방을 가보자.

    그 복덕방을 나와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부른다.

    돌아보니 곁에 앉았던 그 아주머니다.

    다가가자 나더러 방을 구하느냐고 묻는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얼마를 가지고 있는데?

    80만원.

    그래요. 그럼 우리 집으로 한번 가 봅시다.

    돈이 모자라는데요.

    괜찮아요. 방이 마음에 들란가 모르겠네.

     

    아주머니 집은 가회동 언덕 길을 조금 올라가 있는 아담한 한옥이었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니 밖에서 생각했던 것 보다 집이 크고 좋았다.

    방도 여럿 있다. 아주머니는 방을 골라보라고 한다.

    돈 때문에 아무래도 좀 미적거렸진다.

    가진 돈이 적으니 크고 좋은 방을 골랄 수가 있겠나.

    아주머니는 그러는 나를 보고 돈은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대문 맞은 편 남향으로 된 방이 하나 있었다.

    좀 좁았지만,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다 싶었다.

    조그만 툇마루도 있고, 무엇보다 남향인 게 마음에 들었다.

    그 방을 하겠다고 했더니 당장 짐을 들이라는 것이다.

    좀 어리둥절 했다. 이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는가.

    이 아주머니는 왜 내게 이런 호의를 보이는 것일까.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도 내심 좀 의아스러웠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집으로 들어가 살 수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아주머니는 혼자 살면서 그 집에서 점 쳐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와 좀 친해진 후 한번 물어 보았다.

    나에게 어찌 그런 선심을 베푸셨는지.

    아주머니 왈,

    내 인상이 좋다는 것. 저런 인상이면 뭘 맡겨도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

    아주머니는 점쟁이다. 점쟁이는 관상도 잘 알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점쟁이로부터 선택된 '좋은 관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 집, 그리고 그 아주머니와의 관계는 좋게 끝나지 않았다.

    지금의 아내가 그 집의 내방을 들락거리면서 부터이다.

    아내는 같은 통신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연말 망년회를 계기로 더욱 가까워 졌다.

    망년회에서 나는 고주망태가 됐다. 가회동 언덕 눈길은 미끄럽기 짝이 없다.

    그 언덕길을 마누라가 새끼줄로 동여매 나를 끌고 집까지 옮긴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아주머니의 눈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따지듯 묻는 것이다. 그 여자가 누구냐는 것.

    그 물음 때문에 나는 아내가 나를 집까지 끌고 온 사실을 알았다.

    아내는 자주 놀러 왔다. 사내결혼을 하려면 '보안'이 제일이다.

    마땅히 데이트할 장소가 없으니,

    그저 명륜동 성균관대 교정 아니면 가회동 언덕배기에서 만나곤 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결혼할 사람이 생긴 것을 알고는 백팔십도 변했다.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단서가 하나 있기는 하다. 아주머니에게 양녀가 하나 있었다.

    당시 무슨 은행에 다니고 있던 처녀였는데,

    나하고는 그저 눈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다.

    어쨌든 아주머니하고의 관계는 복구가 되질 않았다.

    그러다 부천 원미동에 작은 아파트를 하나 마련하는 바람에 집을 옮겨야 했다.

    이사 나가는 날까지도 그 아주머니는 냉랭했다.

    간다고 인사를 하는데 방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인가,

    무슨 일로 가회동 갈 일이 있어 그 집 앞을 지나는데,

    열린 대문 사이로 대청마루가 보이고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 아주머니 앞에 어떤 사람이 드러누워 있었고,

    아주머니는 그 사람의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누워있던 사람이 그 처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딘가 아픈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집을 찾아보지 못했다.

    오늘 가회동 언덕,

    그 집이 있던 골목이 다시 나오니 그 때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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