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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매한 홀로코스트 다큐멘터리 - '공포의 이반(Ivan the Terrible)'
    컬 렉 션 2021. 1. 2. 13:40

    'Ivan the Terrible.' '공포의 이반'으로 번역된 나치 홀로코스트 관련 다큐멘터리다. 나온지 꽤 된 것인데, 나는 어제 넷플릭스에서 보았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면,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다가 그에 집착해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컨대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의 경우 영화를 본 후 윌리엄 스타이런(William Styron)의 원작을 애써 구해 보기도 했고 영화와 관련된 이런 저런 소품을 구해보기도 했고, 영화도 대여섯번 봤다.

     

    그 이유는 나 스스로 뭐라 딱 집어 말하기가 애매하다. 홀로코스트 만행에 대한 분노도 있을 것이고, 그 대상인 유태인들에 대한 연민도 있을 것이고, 정의와 신앙을 포함한 상식과 가치에 대한 회의 도 있고 아무튼 이래 저래 복잡다단해지는 심경 속을 헤맨다.

    '공포의 이반'은 나치 전범을 추적하고 단죄하는 기존의 다큐멘터리와 좀 다른 양상이 있다. 기존의 것들은 결론이 명확하다. 아이히만의 재판도 그랬고 영화 '뮤직 박스(The Music Box)'도 그랬듯, 예외없이 단죄와 처벌로 마무리 된다. 그와 함께 대체적으로 홀로코스트 피해국인 이스라엘 당국의 집요한 추적과 물불 가리지 않는 조치 등이 인상적으로 부각된다.

    하지만 '공포의 이반'은 좀 다르다. 사건의 전개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좀처럼 그 결론을 예단하기가 쉽지않은 다큐멘터리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그 결론 또한 기존의 것들과는 다르다. '공포의 이반'이라는 이반 존 뎀얀유크(Ivan John Demjanjuk)라는 나치 전범의 죄과가 명확하지 않았고 처벌 또한 재판 중에 사건이 종결됨으로써 법적으로는 무죄로 마무리되는 점이 그렇다.

    시일도 오래 걸렸다. 1986년에 시작된 재판이 2012년 뎀얀유크의 항소 중 그가 병으로 죽으며 재판이 자동적으로 끝날 때까지 무려 26년이 걸린 사건이다.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는 5회에 걸쳐 거의 4시간에 걸쳐 다루고 있는데,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겉잡을 수 없이 빠져 들게하는 흥미를 안겼다.

    재판 과정 중 '공포의 이반'이라는 별명이 붙은 뎀얀유크는 이십 수년의 재판 기간 중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 그는 폴란드 트레블링카 나치 수용소에서 유태인을 학살하는 '살인기계'로 악명을 떨쳤고, 그래서 그에게 '공포의 이반'이라는 별칭이 주어진 여러 반인류적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이스라엘 당국의 집요한 추적 끝에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아 교수형을 목전에 둔 상태에 놓인다.

    하지만 그의 변호사도 만만하지 않았다. 1989년 소련의 붕괴로 KGB 서류가 공개되는 가운데 그 중에서 '공포의 이반'과 관련된 문서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이게 극적인 반전의 증거로 작용하면서 뎀얀유크는 이스라엘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아 다시 그의 삶과 가족들의 터전인 미국 클리블랜드로 돌아간다. 그럼으로써 이 사건이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반전이 생긴다.

    원래의 혐의와 별도의 전범 혐의로 미국이 개입한 후 그를 추방해 다시 독일의 법정에 세운 것이다. 뎀얀유크는 결국 혐의가 인정돼 독일 법정에서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항소를 준비하다 병사한다. 그로써 26년의 '공포의 이반' 재판은 마무리 된다.

     

    이런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결론도 그런지만 존 뎀얀유크가 과연 '공포의 이반'이었는가 하는 점은 애매하다. 무죄를 선고받았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기도 한 것처럼 보이는 반면에 트레블링카 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 등 여러 다른 정황은 그가 '공포의 이반'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 그렇기도, 혹은 그렇지 않기도 한 것같은 애매한 결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뎀얀유크가 무죄를 받는 과정에서는 요람 셰프텔(Yoram Sheftel)이라는 변호사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어찌보면 천재 변호사같고, 어찌보면 '악마와도 거래한다'는 악덕 변호사의 전형같은 셰프텔이 궁극적으로는 재판을 극적으로 뒤짚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과연 진실이 무엇인가는 뎀얀유크 그 자신이 알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진실을 안고 죽어 버렸다. 재판 과정에서 보면 뎀얀유크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이 진정한 그의 모습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언행이 노련했다. 이스라엘 언론은 그를 소시오패스로 단정했다. 사안이 그에게 불리해지고 복잡해질 수록 그는 되살아났고 그 틈을 셰프텔이 메워 주었다.

    그런 관점에서 '공포의 이반' 재판은 뎀얀유크와 셰프텔이 협잡해 이뤄 낸 '최악의 사기 재판'이라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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