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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대구湯
    먹 거리 2021. 12. 23. 07:19

    어제는 날씨가 꽤 추웠다. 친구를 불러내 어디 뜨끈한 우족탕 잘 하는 집에서 낮술이 먹고 싶었다.

    한 친구는 금새 나의 제안에 넘어 갔다. 상도동 사는 또다른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무슨 우족탕이냐 한다.

     

    그 때 퍼뜩 생각난 게 삼각지 대구뽈데기탕이다. 그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무슨 삼각지냐고 한다.

    그럼 어디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만나자 한다. 그래서 저녁 무렵 수산시장에서 만났다.

    먼저 도착한 상도동 친구는 이미 중짜 크기의 대구 한 마리를 사다 '미자식당'에 맡겨놓고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식당에 가면서 싱싱한 해삼을 몇 마리 샀다. 대구는 지리탕으로 주문해 놓고 있었다.

    해삼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엄청 큰 스텐양푼에 초벌로 끓여진 대구 지리탕이 나왔다.

    양으로 치면 다섯 사람이 먹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한번 더 끓고 있는 대구탕을 숫갈로 국물 맛을 보는데 탄성이 나온다. 그 맛이다.

    사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기에 느낌은 더 강했다. 진한 대구 국물이었다.

     

     

     

    대구는 깊은 바다에 사는 생선이다. 양명문의 '명태'에서 읊고 있듯,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밥상이나 주안상에 나타났을 때, 대구는 바다 생선 이상의 것이 된다.

    흡사 인간의 입맛과 생기를 돋우려 바다 용왕이 내린 진미의 선물 같다.

    대구의 계절은 겨울철이다. 겨울철에 우리의 입맛을 다시게 하는 속 깊고 맛있는 생선이다.

    양푼에서 펄펄 끓고 있는 대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 있었다.

    하얀 곤이의 부드러운 맛, 풍성한 육질의 살, 대구 특유의 깊은 맛이 스며있는 뼈다귀.

    눈깔은 운 좋게도 나의 차지가 되었다.

    대구는 대가리부터 꼬랑지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생선이다. 싱싱한 대구로 탕이나 찌게를 끓이면 단맛이 난다.

    그 시원한 국물 맛은 오장육부에 스며들어 속을 편안하고 부드럽게 한다.

    말린 대구 맛은 또 어떠한가. 꾸덕꾸덕 말린 대구를 정종과 함께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밤새도록 질리지 않는 안주가 된다.

    대구 아가미로 만든 장자젓갈의 맛은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무를 작게 네모나게 썰어 대구알과 함께 삭히면, 정말 밥도둑이 따로 없다.

    90 나이를 넘긴 나의 어머니는 아직도 겨울이면 장자젓갈을 담그신다.

    모두들 정신없이 먹었다. 친구들은 막걸리, 나는 소주를 마셨는데, 두 병이 후딱 비워졌다.

    음식이 맛있고 감동적이고, 그 게 고향을 느끼게 해주면 뭔가 좀 애적(哀的) 감정이 생기는 모양이다.

    아마도 사는 게 팍팍한 현실에 대비돼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래서인가. 거짓말 좀 보탠다면 눈물이 났다는 얘기다.

    모두들 정신없이 먹는데 그 풍경이 조용한 것도 아마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덧붙이건대 대구는 마산이라는 생각이다. 마산은 우리들의 고향이다.

    어릴 적부터 숱하게 접하고 먹어본 생선이다. 어릴 적 마산 남성동 선창가에는 대구가 넘쳐흘렀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어느 집에서나 대구는 풍성했다.

    집집 담장마다 대구를 걸어 말리면 골목에는 겨울 양광(陽光)에 마르면서 익어가는

    대구의 고소하고 아리한 냄새가 흘러 넘쳤다.

    이 게 따스한 남쪽 도시 마산의 겨울철 한 풍경이었다.

    서울에서도 물론 대구를 대할 곳은 많다. 웬만한 식당, 특히 일식당에서는 대구탕을 판다.

    삼각지에 가면 대구탕 골목이 있다. 아주 오래 된 곳으로 주로 매운탕을 한다.

    그 중에서 육군상사 출신의 주인장이 하는 매운탕집이 제일 맛있었는데, 아직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대구탕 골목 근처에 대구 뽈데기탕으로 꽤 알려진 식당도 있다.

    지난 9월, 선배와 함께 점심으로 먹어 봤는데,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이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대구를 직접 사서 해먹은 대구지리탕 맛에 비길 수가 없을 것 같다.

    우리들은 이 겨울 앞으로 얼마나 노량진 수산시장에 올 것인가로 한참을 얘기했다.

     

    양명문의 '명태'에서 명태는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의 쐬주 안주가, 혹은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고 노래한다.

    엊저녁 먹은 대구탕은 나에게 무엇이 되었을까. 무엇이 되어도 되었을 것이다.

    오늘까지도 숙취는 없고 마음이 전에 없이 풍성한 느낌인 걸 보면.

    과연 대구는 나에게 무엇이 되어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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