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 렉 션

이 윤기 선생, 그리고 '장미의 이름'

김상지 2010. 8. 29. 07:38

이 윤기 선생을 알게된 것은 순전히 '장미의 이름'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그 소설을 이 선생이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 게 1986년이었을 것이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어떻게 움베르토 에코를 좀 알게됐다.

철학자, 기호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그 양반의 잘 다듬어진 학문적 소양에다

문학적 소양이 더 해진 작품이 '장미의 이름' 아니던가.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번역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좀 뿌듯했다.

단행본으로 번역돼 나온 그 책을 얼른 샀다.

단숨에 읽으려 했는데, 그 게 좀 어렵다.

중세 수도원에 기호처럼 얽히고 섥힌 얘기들이 쉬울리가 있겠는가.

그런 전제를 깔고 읽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너무 어렵다.

번역의 문제, 번역이 잘못 된 것 아닐까. 그 게 떠 올랐다.

수도원 내부를 그린 도표가 있는데, 책에 나온 내용과 다르다.

도표를 새로 그려보기도 했다.

결국 중도에 읽기를 그만 뒀다.

 

알고지내던 어떤 선배분과 번역의 어려움에 관해 얘기를 나눈 게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경구가 있었다.

'Time files like an arrow'

'흐르는 세월은 화살과 같다,' 이 말을 잘못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타임이라는 파리들은 화살을 좋아한다'

번역의 오류를 수록한 일본 책에 나온다는 얘기다.

 

'장미의 이름,' 그 번역본을 어디엔가 팽개쳐놓고 한동안 이 윤기 선생을 잊었다.

그런데, 그 얼마 후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장미의 이름,' 그 번역본에 오류가 많다는 것,

그리고 번역한 이 선생이 그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원래 이탈리어語 판이 그 책의 영어판으로 번역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틴어 원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 책을 올케 읽을 수가 없다.

투박한 직역이었다. 그 무렵 기억으로, 이 선생은 그 걸 고백하고 있었다.

라틴어를 공부하겠다. 그리고 나서 번역의 오류부분을 고치겠다.

 

그 후 이 선생은 미국의 컬럼비아대학인가로 공부하러 떠난 것으로 알고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신문에 이런 책 광고가 실렸다. '장미의 이름'을 낸 출판사다.

먼저 출간된 책의 번역의 오류를 고친 수정판 '장미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처음 나온 게 단행본이었다면, 수정본은 상, 하로 된 2권 짜리였다.

그 때, 이 선생의 집념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선생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었다는 건 아니다.

출판사의 상술 때문이다.

 

처음 간행된 책이 잘못돼, 수정분을 펴냈다면

첫 책을 사본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것도 두 권짜리로 펴내,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최소한 첫 책을 산 독자들에게 얼마 간의 할인혜택을 주면서 교환해 줘야하는 게 아닌가.

나의 생각은 그랬다. 그래서 출판사에 전화도 한 기억이 있다.

물론 출판사는 나의 생각을 묵살했고, 그렇게 해서 유야무야됐다.

출판사의 상술과 번역자를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독자의 감정이 그런가.

번역자로서의 이 선생의 집념과 양심은 인정한다.

그러나 출판사의 얄팍한 상술로 그 게 일정 부분 훼손됐을 것이라는 것이 당시 나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독자나 이 선생이나 결국 같은 피해자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 선생의 그 후 행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희랍인 조르바' 등 200여 편을 번역하면서,

우리나라 번역문학계에선 보배같은 존재로 활약해 왔다.

그 뿐 아니라, 소설과 수필 분야에서도

선생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중에서도 '장미의 이름'은 아무래도 이 선생이 가장 애착을 둔 작품으로 보인다.

번역의 오류를 인정하고 새로 수정본을 낸 책이니까 그럴 것이다.

 

선생의 그런 마음이 드러난 게 2000년이다.

선생은 다시 한번 '장미의 이름'을 수정한다.

이 번에는 한 철학박사의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강 유원이라는 철학박사가 학생들에게 그 책을 텍스트로 강의하면서

3백 여 군데의 부적적한 번역, 원서대비 빠져있고 삭제해야 할 부분을 엮어

'장미의 이름 고쳐읽기'라는 60쪽의 원고를 만들어 선생에게 전달한 것이다.

선생은 그 지적을 수용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해박한 중세철학 지식을 이해할 수 없었음을 솔직히 토로한다.

그리고 지적을 해 준 강 박사에게 고마움과 경의를 표한다.

이 윤기 선생은 그 해 6월에서 7월까지 강 박사가 지적한 부분 중

260 군데를 바로 잡는다. 그리고 그해 7월 세 번째의 개정판을 내 놓는다.

한 책의 번역본이 수정.개정판을 합해 세 번 나온 것은

우리나라 출판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그 이 윤기 선생이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는 소식이다.

선생의 별세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장미의 이름'이 떠 오른 것은

그 책을 통한 선생의 번역과 문학에 대한 집념, 양심, 

그리고 외경심이 새삼 느껴지기 때문이다.

선생의 '장미의 이름'도 선생과 함께 하늘나라에 상찬됐을 것이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