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옛 인사동을 추억하며
어제 모처럼의 인사동 나들이. 선배를 만나러 나간 길이었습니다. 수도약국 옆 골목, 무슨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했었지요. 별로 오래지도 않은 예전, 그 집은 순창고추장으로 유명했습니다. 그 골목은 참 낮익은 곳입니다.
골목 맞닿은 곳에 '남원국밥'이 있었습니다. 蘇 머시기라고, 남원출신 여자분이 주인이었지요. 그 집은 된장을 풀어 끓인 시래기국이 일품이었지요. 그래서 아마 '국밥'이란 상호를 달았을 것입니다. 1990년대 초반, 참 많이 다녔습니다. 광화문 인근에서 일할 때라, 밤은 주로 인사동 그 집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일차를 하고 나오면 거진 빠짐없이 들리는 곳이 있었지요. '실내악'이라고, 지금의 대성산업 정문 맞은 편에 있던 지하 맥주집이었지요. 숙명대학을 나온 崔 머시기라는 분이 주인이었지요. 같이 많이 마시기도 했고, 많이 싸우기도 했지요. 김 머시기라는 유명 정치인과 한 밤 중에 말싸움이 벌어져 얼굴 붉힌 적도 있었지요. 자기 형님 이름에 '씨'자를 붙였다고 시비를 걸어온 것입니다. 선생이라고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웃을 수도 없는 먼 얘깁니다. 그 분, 어제 신문 보니까 무슨 대학에 석좌교수로 임명됐습디다.
'남원국밥'에도 꽤 유명한 분들이 많이 왔습니다. 대문 옆 골방이 유명했었지요. 단골들에게만 개방되는 곳이었지요. 우리의 전성시절이 끝나고 한번 그 집에 가서 그 방을 출입하는 면면들을 보니까,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청와대 수석을 지낸 분도 있었고, 후에 총리를 지낸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국밥집은 지금 거기에 없습니다. 헌법재판소 맞은 편으로 옮겼다는데, 옮기고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남원국밥'의 蘇 머시기 주인의 동생이 있었지요. 그 친구가 그 부근에서 '오수'라는 콩 전문음식점을 하고 있습디다. 오수는 지명이지요. 전라북도에 있는 곳인데, 예전 '서편제'라는 영화에도 나오는 곳이지요.
그 골목 오른편 샛길가에 별칭 '따따따'라는 와인집이 있었지요. 왜 '따따따'라고 불렀는가 하면 옥호가 'WWW'였는데, 그 것을 일일이 발음키가 귀찮아서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 집도 많이 다녔습니다. 물론 유명한 분들도 많이 오셨지요. 이화대학의 김 모교수, 그리고 서울신문 申 모 전 사장 등이 단골이었습니다. 그 집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 2년 됐는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갔더니 소리소문도 없이 없어져 버렸더군요. 주인분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그 집을 찾아야 합니다. 외상이 있어서입니다. 지금도 주인분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지요. 제 꼬라지가 보기싫어 사라졌다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들도 있지요.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앞에 언급한 순창고추장 전문집은 '신일'입니다. 그 맛을 못잊어 그 집을 약속장소로 잡았는데, 오랜 만에 가보니 예전같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눈에 띌만한 고추장 전문음식도 없었습니다. 두부전, 황태전 같은, 일반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음식들을 시켜 먹었습니다. 맥주에 소주를 타 몇잔 들이켰더니 취기가 왔습니다.
얼큰한 기분으로 인사동 거리를 모처럼 걸으니 옛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인사동은 아니었습니다. 알면서 다니던 집들이 한 군데도 없었으니까요. 학고재 골목에 있던 '시인과 화가'는 '귀천'으로 바뀐지 오래됐습니다. 주인장 卞여사는 몇 년후 골목 끄퉁이에 같은 옥호로 술집을 냈는데, 올해 초인가, 문을 닫았습디다.
'다래'라고 학고재 맞은 편 이층에 있던 맥주집은 있습디다. 퉁퉁하고 복스럽게 생긴 마담이 주인이라 손님들이 꽤 있었습니다. '호랑나비'를 부른 김 흥국이도 그 집 단골이었지요. 90 몇 년도인가 어느 날 한번 갔더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술을 마시고 있더군요. '이모집'은 예전 그대로 그 자리에 아직 있습니다. 맞은 편 '사천집'의 아랫집, 말하자면 '사천집'과는 같은 집인데 좀 싼집이 '이모집'이었지요. 주인은 대중음악에 족적을 남긴 故 이 봉조의 누님이었는데, 지금도 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밥 먹고 술 마시는 집만 얘기했습니다. 인사동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밖의 집들도 물론 있습니다. 종로로 빠지는 사거리 모서리에 있던 '아라가야'도 그 집중의 하나입니다. 고향 후배인 이 나경씨 하던 한복집이었지지요. 개량한복이 흔치않던 시절, 꼼꼼한 바느질 솜씨와 탁월한 디자인감각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집이었지요. 한복집과 함께 하던 찻집도 인사동의 또 하나의 명물이었습니다. 가끔씩 고향서 선배들이 올라오면 들리던 곳이었습니다 지금 나경씨는 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처럼 인사동을 나가 길을 걸으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추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선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습니다. 양 효성 선배라고, 예전 신문사에 같이 있던 선배입니다. 지금은 교직에서 은퇴하시고 집필과 여행으로 넉넉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옆은 출판 일을 하고있는 이 영희씨. '신일'에서 스냅으로 한 컷 찍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