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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달인

김상지 2010. 10. 13. 14:13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

두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타고 난 싸움꾼이 있을 것이고,

꾸준한 연습의 결과로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타고 난 싸움꾼으로는 '스라소니'로 불리는 이 성순과

김 두한을 꼽는다.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싸움을 잘 했는가를 두고 논란이 있는데,

한판 붙었다는 설과 붙기 전에 쌍방이 그만 뒀다는 두 얘기가 있다.

'야인시대'라는 드라마에서는 김 두한이 싸움을 피한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과는 다르다고 한다. 여러 관점이 있겠으나, 일대일의 싸움꾼으로는

'스라소니'가 당대 최고였고, 발차기로 상대를 일시에 제압하는 기술은

김 두한을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데, 싸움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둘이 직접 붙는 것을 보지 않고서는 우열을 가리기가 좀 어려운 것으로 보여진다.

 

고향 마산 사람들 중에 전해져 오는 싸움꾼이 한 분 계신다.

하도 여러 말들이 많아 직접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수소문을 넣었는데,

마침 분당에 계신다고 해서 어제 찾아 뵈었다.

안 무중이란 분인데, 1928년 생이니까 올해 82살이다.

이 분의 무용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남대문시장 사건이다.

1960년대 초 였다는데, 당시 이 분은 남대문시장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시장에 주전부리와 술을 파는 어떤 좌판가계의 아주머니와 인연이 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시장상인들을 상대로 못된 짓을 일삼는 양아치 서너명이

이 좌판에서 무전취식을 하면서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전해듣고는 이 분이 그 좌판으로 달려왔다.

체구도 조그만 이 분은 누가 보더라도 덩치 큰 양아치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단 3분 만에 승부가 났다고 한다. 두 명은 큰 대짜로 뻗었고,

두 명은 혼비백산 끝에 줄행랑을 놓았다고 한다. 이 무용담으로 이 분의 이름이 알려졌으나,

결국 그 때문에 남대문시장을 떠났다고 한다.

일본에 출생한 이 안 무중은 해방 후 마산으로 나와 마산상고엘 진학한다.

해방공간의 어지러운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도 좌우로 나뉘어져 분란이 많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안 무중은 우익 쪽에 섰다고 한다. 좌익의 힘이 강했던 시기라,

당국에서도 골머리를 앓았던 모양이다. 인문계마산고등학교엔 좌익이 훨씬 강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추진된 게 '전략전학'이었다. 안 무중은 '깨도'라는 별명의 이 형도와

마산고로 전학을 해 주먹으로 좌익학생들을 진압했다는 얘기다.

그 시기 안 무중의 주먹에 안 나가 떨어진 사람이 없었는데,

상대는 주로 권투선수 내지는 역도선수들이었다고 한다.

 

 

 

 

만나 뵌 안 무중의 첫 인상은 곱게 늙으신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갸날픈 체구에 조용조용한 목소리를 가진 인자한 할아버지의 인상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싸움을 어떻게 그렇게 잘 했는가고.

 

"연습의 결과입니다. 매일 매일 연습을 했었지요."

 

앞에서 언급한 싸움꾼들의 부류 중 후자에 해당하는 싸움꾼이 바로 안 무중이었다.

조선인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거친 차별의 일본사회를 살려면

자신을 지키는 자기방위 수단으로서의 힘과 주먹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소학교때부터 밥먹는 것과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한시도 빠짐없이

몸과 주먹을 단련시키는 '싸움의 연습'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단련된 싸움기술과 주먹으로 신쭈꾸 등에서 일본건달들과 거진 매일 결투를 벌였다.

승승장구. 그렇게 되다보니 자연 도꾜에서도 '조선인 주먹꾼'으로서 명성이 주어진다.

 

그러나 안 무중은 싸움만 한 게 아니다. 공부도 열심히 한다.

해방 후 귀국한 것은 고등학교는 고국의 고향에서 다니게 하려는 부친의 뜻에 따른 것이다.

마산상고, 마산고등학교 생활 3년을 마친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다.

대학진학을 하기 위한 것이다. 안 무중은 일본대학 예술학부에 들어간다.

전공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춤'이다. 당시 일본서 붐을 타던 '스포츠 댄스'를 전공한 것이다.

'스포츠 댄스'는 '볼룸댄스'라고도 불려지지만 일반 사교춤과는 구분되는

'컴피티션 댄스(competition dance)'의 주류를 이루는 춤이다.

 

'싸움꾼' 안 무중은 이후 '스포츠 댄서'로 화려한 변신을 한다.

1970년대 초 귀국한 안 무중은 한국에 '스포츠 댄스'를 선보이면서

이후 우리나라 초창기 '스포츠 댄스'의 보급에 전력을 기울인다.

그는 '한국예술무도협회' 심사위원 등으로 있으면서 각종 언론기고, 강연 등을 통해

건전한 춤의 중요성을 알리면서 춤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기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안 무중은 결국 중년의 나이 이후 '싸움꾼'에서 '댄서'로 인생의 행로를 바꾼 것이다.

'싸움꾼'과 '댄서,' 어찌보면 매치가 잘 안 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몸을 움직인다는 측면에서는 통하는 그 무엇이 느껴지기도 한다. 

 

안 무중에 대한 관심사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는 싸움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말도 아끼려 하고.

"싸움을 잘 하는 비결은?" 하고 물으면 "연습이지요" 하는 그저 단답식의 답변이다.

노년의 나이에 정작 그가 온 신경을 쏟고있는 일은 따로 있다.

'스포츠 댄스'의 국가자격증 제도를 확립하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국회와 행정기관, 정치권을 상대로 진정을 하고 있지만, 생각대로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작년 말 현재 법제처에서 법안 심의를 하고 있다는 문화관광체육부의 회신 만 받아놓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