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 學 究

껄 떡 심

김상지 2010. 12. 26. 12:34

우리는 갈치보쌈 김치를 먹고 있었다.

25일, 매우 추운 날이다.

북한산은 말 그대로 냉동고 그 자체였다.

보통 때 같으면 요기를 산에서 하고 오지만,

이날은 너무 추워 그냥 내려왔다.

시장기가 목에 걸렸다.

구기동 '삼각산'은 갈치보쌈 김치로 유명하다.

우리는 그 김치 맛에 익숙해져 있다.

다닌지가 3년을 넘었기 때문이다.

알맞게 숙성돼 있어야 한다.

너무 익어도 그렇고, 풋 익어도 그렇다.

모처럼 시킨 그 김치는 아주 잘 익었다.

네명이 먹는데, 갈치는 몇 젖가락 만에 가고 없다.

 

옆 자리에 늙수레한 분들이 앉았다.

주인 할머니가 같이 자리하시는 것을 보니 이 가계 단골인 것 같다.

그 분들이 뭘 꺼낸다. 먹을 거리다.

할머니가 일하는 아주머니더러 뭘 시키는 등 부산하다.

뭔가 싶어 봤더니, 홍어다. 얼린 홍어회다.

차가운 날씨라 얼음이 살풋 맺혔는데, 붉으스레한 것이 맛나 보인다.

20년도 넘었다. 과천 살 적이다.

선배 언론인 한분과 새벽에 겨울 관악산을 올랐다.

무척 추웠다. 연주대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을 정도로 추웠다.

바로 하산을 하면서 대피소에서 요기를 했다.

그 무렵, 관악산 연주암 아래, 과천 향교 코스 쪽엔 대피소가 있었다.

일행 중 흑산도 출신 어느 분이 홍어를 갖고 왔다.

얼음이 송송 맻힌 게 알맞게 언 홍어회 였다.

한 점 얻어 먹었는데, 말 그대로 입에서 살살 녹았다.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옆 자리의 홍어를 보니 그 때 그 홍어 맛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는 이제 갈치도 다 골라먹고 나니 먹을 게 마땅치 않은 상황 아니던가.

먹고 싶다. 우리끼리 그런 말들이 오갔다.

어떤 친구는 주제넘게 입맛을 다시면서 홍어회 먹은 그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났던가. 옆 자리 분들이 일어설 채비를 한다.

그런데, 그냥 일어서는 폼이다. 홍어는 아직도 한 접시 가량 남아있다.

우리 일행들, 누구 뭐랄 것도 없이 그 쪽으로 주시를 한다.

그 사람들이 일어서 출입문 쪽으로 나가고 그 테이블은 비웠다.

한 친구의 성질이 급했다. 아줌마를 불렀다.

저거, 우리 좀 먹을 수 없을까.

아줌마가 힐끗 남은 홍어를 보고는 씩 웃는다. 그리고는 한 마디.

글쎄요. 물어 보고요.

그 소리릉 들은 것 같다.

그 자리 앉았던 분들 중의 한 사람이 돌아서더니,

주인 할머니더러 뭐라뭐라 한다.

홍어를 챙겨달라는 주문이었던 것 같다.

잊었던가, 아니면 우리가 그러는 것을 보고 용심이 나서였던 것인가.

아줌마가 우리보고 다시 쌩긋 웃는다. 아쉬움과 머쓱함이 담긴 웃음이다.

아줌마가 그 모양이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

모두들 얼굴만 쳐다보고 할 말을 잃었다. 얼마나 머쓱했던지.

 

이유있는 껄떡거림,

그러나 채워지지 않은 껄떡거림은 주책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주책바가지를 쓴채 씁쓸하게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