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아내의 건망증

김상지 2021. 9. 17. 11:06

세탁기 배수구에서 누런 물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던 아내는 땀에 전 채 소파에 앉아있다.

엊저녁 내 베갯닛이 더러워졌다고 궁시렁대던 아내는,

아침준비를 끝내자마자 그 일부터 챙겼다.

한 김이었을까, 소파 방석컵까지 재다 벗겨내고 있었다.

잔뜩 안고 세탁기로 가는 것까지만 봤는데,

그 세탁기 배수구에서 누렇고 이상한 물이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다 생각했다.

마침 아내가 다가오길래, 그 걸 가리켰다.

그 게 그리도 놀랄 일이었던가. 아내는 자지러지는 듯 했다.

그리고 미안함과 씁쓸함이 뒤섞인 표정.

베갯닛 대신 베갯속을 세탁기에 넣은 것이다.

베갯 속 내용물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 게 씻겨지니 누렇고 이상한 물이 안 나올수 있겠는가.

예전 같으면 한 소리했을 것이다. 이 마누라쟁이라면서…

그러나 나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건망증이면 어떤가.

아기같은 아내의 이런 증상을 나는 보듬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