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거 리

동심(童心)의 와인(wine), 그리고 브레송(Bresson)

김상지 2021. 12. 13. 17:18

'Italy Rome, 1950' by Henry Cartier-Bresson

 

 

 

큰 병에 든 와인을 들고가는 어린 소녀.

앙리 까르티에-브레송(Henry Cartier-Bresson)의 사진이다.

어제 글로벌 SNS에 올려진 흑백사진으로,

사진에 제목이 붙어있다.

 

'Italy Rome, 1950.'

 

1950년 이탈리아 로마의 한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만 간락히 밝히고 있는데,

더 구체적인 부연 설명은 없다. 

그냥 보고 느끼라는 묵시감을 안긴다. 하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큰 병에 든 와인은 묵직하게 보인다. 소녀는 그것을 두 팔로 보듬 듯이 들고 간다.

좀 무겁게도 보인다. 그럼에도 소녀의 발걸음은 가볍다. 

오른 쪽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르는 듯 소녀는 와인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다.

 

저 와인을 설마 소녀가 마시려고 저 큰병의 와인을 들고가는 건 아닐 것이다.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어디선가에서 와인을 구해 들고가는 것이다.

소녀의 표정을 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소녀는 와인을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드릴 즐거움으로 충만한 표정일 것이다. 

 

 

 

'Enfant rue Mouffetard aved deux bouteilles de vin'(1952) by Henry Cartier-Bresson


 

브레송의 사진 중에 이와 비슷한 사진이 또 있다.

1952년 파리의 무르타르 거리를 큰 와인 두 병을 들고 즐겁게 걸어가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다.

사진 제목은 소녀의 사진보다 좀 더 구체적이다.

 

'무프타르 거리에서 와인 두 병을 갖고 오는 어린이

(Enfant rue Mouffetard avec deux bouteilles de vin)'

 

저 소년의 표정을 보라. 

자기가 들고가는 와인으로 즐겁고 행복해 할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의 모습을

진즉부터 그리며 그 또한 즐겁고 기대에 찬 표정 아닌가.

뒤에서 소년을 바라보며 걷고있는 소녀의 모습도

소년의 기대에 부응하는 즐거운 표정들이다. 

 

브레송은 소년의 표정을 그의 사진의 핵심포인트인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으로 포착한 것이다.

브레송 사진이 아주 인간적이고 따뜻한 것은 그 '결정적 순간'에서

다음으로 이어질 행위를

묵시적으로 예시해준다는 것이다.

 

소녀의 사진에서는 표정대신 신발이 벗겨진 채 걷고있는

어린 소녀의 오른 발에서 그 표현 포인트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와인, 인간이 두발로 서서 걷는 이족직립 보행의 호모 사피엔스 이래

지금껏 그 구미(口味)에 가장 최적화 된 마실거리 아닌가.

와인을 들고 즐겁게 걷고있는 소년소녀의 모습이 이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