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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전 미국무장관 別世 at 84obituary 2022. 3. 24. 12:18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전 미국 국무장관이 23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84세. CNN 등 외신들은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사인은 지병인 암 때문인 것으로 그녀 가족들의 성명을 인용, 보도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미·소 냉전 종식 시점부터 2001년 9·11 테러 발생 즈음인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외교·안보 정책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클린턴 행정부 1기(1993~1997) 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맡았고, 2기(1997~2001년) 임기 때는 미 역사상 최초로 여성으로서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장관에 올랐다.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태어난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되자 1950년 미국으로 이주한 올브라이트는 1970년대 후반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의 입법담당 수석고문을 지냈고,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백악관 NSC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를 보좌하기도 했다. 이후 유엔대사, 국무장관 등 고위직을 지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을 옹호하고 발칸반도의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동맹의 개입을 촉구해온 인사로 통한다. 또 핵무기 확산 억제를 추구하며 전 세계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한 인물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그녀는 2000년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방미한 조명록과 논의 끝에 북미 공동코뮈니케 발표를 이끌었다.그 직후 그는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금수산 기념궁전(옛 주석궁)에 있는 김일성 주석의 묘를 참배했었다. 다만 올브라이트 장관의 참배 장면은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올브라이트는 추후 자신의 자서전 <마담 세크러터리>에서 “세계에는 북한보다 더 가난한 곳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정신의 자발성이 그보다 철저하게 압살된 곳은 없었다”라며 “외교상으로 필수적인 듯했으므로 나는 이 모든 것에 책임이 있는 사람의 묘를 찾았지만 추모에 어떤 경의도 바칠 수 없었다”고 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지난달 26일 미국 MSNBC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의 “역사적인 잘못”이 될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침공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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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브라이트 전 미국무장관의 별세소식을 접하면서 떠 올려지는 책이 한 권 있다. 그녀가 2018년 펴낸 <파시즘(Fascism: A Warning)>이라는 책이다. 원 제목 그대로 하자면 <파시즘의 경고>가 맞겠다.그 자신 유대인 출신으로 유년시절 나치독일에 의한 전쟁을 경험한 것과 유엔대사와 미 국무장관(1997-2001) 등 화려한 외교관 경력을 통해 얻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파시즘의 어제와 오늘을 분석, 전망하고 있는데 역대 파시스트 인물과 파시즘의 사례들, 그리고 그에 따른 후과및 교훈 등이 올브라이트의 풍부한 지식과 함께 그녀 특유의 글 솜씨가 더해져 읽는 재미가 있다.
올브라이트는 지난 20세기가 민주주의와 파시즘이 충돌한 시대라고 정의하면서 히틀러와 무솔리니로 상징되는 파시즘에 바탕한 파시스트를 이렇게 규정한다.
"스스로를 국가 전체, 혹은 집단 전체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자이다. 그는 타인의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기꺼이 폭력을 동원하고 자신이 가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올브라이트는 파시즘과 파시스트가 과거에 있었던, 그러니까 역사적인 산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냉전 이후 그 양상과 갈등구조만 달라졌을 뿐 파시즘은 여전히 지구촌에 그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파시즘의 계승과 그 계승자에 대한 강한 경계를 보내고 있다. 이 대목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당시 미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에게서도 파시즘의 면모를 꺼집어 내고 있는 점이다. 대중 분열을 심화시키고 민주제도를 실컷 조롱하면서 역사상 자유세계의 옹호자였던 미국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북한의 김정은 또한 1920년대와 30년대 파시스트들이 쓰던 전략들을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다면서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올브라이트는 이 책에서 한반도 상황에도 유의하고 있다. 남북한 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파시즘의 가장 해악적인 요소들을 잔뜩 품고있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극단적인 민족주의, 중앙집권화된 권력, 인권 유린, 그리고 무력의존성 등의 국가시스템을 거론하고 있다.북한 핵에 언급하면서 올브라이트는 그 해결방안과 관련해 북한이 좀 더 이성적인 접근법을 추구한다면 화해의 문을 열어두어야 하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북한의 공격성을 억제하기 위해 보다 확고한 입장을 취할 것을 한국 측에 주문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올브라이트의 한국에 대한 평가는 파시즘과는 완전히 동 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 문재인 정권 2년째인 한국에 대해서는 칭송 일색이었다.이를테면 "남한에서는 진취적이고 유연한 사고의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구역들 중 하나를 일구어냈고, 자유롭고 열린 정치토론에 참여하고 있으며, 음악과 영화, 그리고 문학과 음식에 이르기까지 세계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다채로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 대조를 하면) 놀라 자빠질 정도다"고 쓰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의 한 부분인데, 이 글을 읽으며 솔직히 낯이 좀 뜨거워졌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그 때나 문재인 정권 퇴진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과연 대한민국이 그러한가라는 데서 비롯되는 자괴감 내지 수치심 때문이다. 연장선에서 위에서 올브라이트가 파시스트로 규정해 언급한 대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나하나 적용해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충동적인 욕구가 일기도 했다. 이른바 촛불혁명을 앞세운 그의 유사(pseudo) 민주주의에 대한 허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인데 괜한 시간 낭비일 것 같아 그냥 생각으로만 그쳤다.
*이 책을 읽다 재미있는 단어를 하나 알았다. '카프카세크(Kafkaseque)'라는 단어인데, "카프카적, 그러니까 부조리하고 음울하다"는 뜻으로 '변신'의 체코슬로바키아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올브라이트도 체코 출신이라, 그녀는 이 책에서 체코의 파시즘과 공산화에 적잖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2차대전 후 체코가 공산화되는 과정에서의 체코의 분위기를 언급하면서 Kafkaseque 이 단어를 썼다.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22/mar/23/madeleine-albright-obit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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