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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발도(阿只拔都)를 찾아서카테고리 없음 2019. 9. 19. 19:06
조국 사태로 세상이 어지럽다. 그에 연유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상하게도 이즈음 머리 속을 맴도는 역사 속의 한 인물이 있다. 아지발도(阿只拔都). 고려 말 우왕 무렵에 한반도를 침탈해학살과 노략질을 자행한 왜구(倭寇)의 나이어린 수장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다. 그 이유는 태조 이성계가 황산전투에서 아지발도를 죽여 왜구를 섬멸했기 때문이다.그 무렵이 고려 말, 조선 초인 麗末鮮初였으니, 고려사, 고려사절요에도 나온다. 용비어천가에도 나오고 심지어는 다산 정약용의 시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아지발도라는 이름은 일본 이름이 아니다. 고려 군사들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아기라는 뜻의 아지와 몽골어의 용맹함이라는 뜻의 바투를 한자어로음역해 표기한 발도가 합쳐진 합성어 이름인데, 말하자면 '아기 장수'라는 뜻이다. 아기발도(阿其拔都)라고도 한다. 전해져 오기를 아지발도는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웠으며 용감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며 돌진하면 향하는 곳은 모두 쓰러져 감히 당해낼 자가 없었으니, 고려군은 아지발도 이름만 듣고도 벌벌 떨었다고 한다.
아지발도를 언급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한 역사서와 시들 모두 나이 불과 15, 6세에 거대한 왜구집단을 지휘해 선두에서 싸우는 아지발도의 용맹스러움을 칭송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적장인 아지발도를 칭송하는 것은 일종의 반어법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용맹스러운 아지발도를황산전투에서 이성계가 죽였다는 것으로, 조선 국조 이성계를 띄우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지발도는 고려민의 입장에서 보면 학살과 약탈로 그들을 괴롭힌 저주의 대상일 것인데, 오히려 고려민들은 아지발도를 '숭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성계가 아지발도의 왜구를 궤멸시킨 황산전투가 벌어진 전북 남원 운봉 지역에서 이를 토대로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아기장수'나 '퉁구리' '피바위 전설' 등의 설화는 아지발도를 주제로 한 것이다. 설화는 장군의 풍모를 갖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난 '아기 장수'가 결국 관군에 의해 죽으면서 이 '아기 장수'의 이상이 좌절된다는 내용인데, 이는 아지발도가 이성계에 의해 처절한 죽임을 당한 것을 비유한 것으로, 이 설화에서는 '아기 장수,' 즉 아지발도가 역설적으로 '대중의 영웅'으로 미화되고 있는 것이다.
고려 백성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민간설화를 바탕으로 한 아지발도에 대한 이런 인식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와 논란이있기는 하다. 하지만 뚜렷한 결론은 없다. 일본에서 조차 아지발도라는 인물에 대한 자료가 거의 전무할 뿐더러 그저 민간에 의한 설화 만으로는 결론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연구자들 사이에 일치되는 견해는 있다.
설화 속에서 느껴지는, 고려 백성들이 아지발도를 좋게 보는 평가가 고려말과 조선초 왕조지배층에 대한 일종의 반발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다. 왕족과 귀족들의 토지겸병과 조세 및 요역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 지배층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시절이었다. 또 이성계가 왜구를 격멸하는 공 등을 앞세워 고려조를 멸망케 한 역성혁명 또한 왕권 찬탈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麗末鮮初의 지배층에 대해 이런 불만이 가득한 상황에서 고려관군과 맞서서 승승장구하는 아지발도의 모습에서 고려백성들은 어떤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이 그런 설화를 통해 아지발도를 숭상하는 계기로 작용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아지발도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한국에 엄청난 해를 끼친 인물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용비어천가 등 조선왕실에 의한 언급이나, 민간 설화에서 어려운 현실을 타파할 '아기 장수'로 묘사되고있는 것이나 이래 저래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특이한 일본인이라 할 것인데, 일컬어 '역설의 일본인'이라하면 어떨까 싶다.
아지발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인 몇몇 분들이 있다. 부산대학교 정영현 교수도 그들 중의 한 분인데, 나 또한 계속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볼 것이다.(사진은 어느 분이 가상해서 그린 것을 퍼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