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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요리'들컬 렉 션 2020. 1. 23. 07:37
철학자이자 소설가, 기호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책을 읽고 있는데, 예상 외로 그는 요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대단한 미식가였던 것 같다. 책 부분 부분에 요리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19세기 파리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레스트랑인 '카페 앙글레'에 관한 글도 있다. 이 카페로 말하자면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의 바베트가 이 곳의 세프였다가, 파리 코뮌 때 덴마크로 피신해 한 어촌 마을에서 '카페 앙글레'의 그 유명한 만찬을 베푼 소재이기도 하다. 에코는 '카페 앙글레'의 '세 황제의 만찬' 메뉴를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이 게 바베트가 준비했던 레시피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는데, 아무튼 한번 소개해 본다.
"수프레 알라 렌(왕비식 수플레), 필레 드 솔 알라 베니시엔(베네치아식 서대 순살 구이), 에스칼로프 드 튀르보 오 그라탱(얇게 저민 가자미 그라탱), 셀 드 무통 퓌레 브로톤(브르타뉴식 퓌레를 곁들인 양고기 엉덩잇살 구이)을 시작으로, 앙트레(전식)로는 풀레 알라 포르튀게즈(폴튜걸식 닭고기)나 파테 쇼드 카유(메추라기 고기를 다져서 만든 뜨거운 파테나)나 오마르 알라 파리지엔(파리식 바닷가재 요리), 또는 그 세가지를 한꺼번에, 그리고 플라 드 레지스탕스(주요리)로는 칸통 알라 투아네즈(루앙식 새끼오리 구이) 또는 오르톨랑 쉬르 카나페(토스트에 올린 멧새 구이), 이어서 앙트르메(사이 요리)로는 오베르진 알레스파뇰(에스파냐식 가지 요리), 아스페르주 앙 브량슈(아스파라거스 어린 줄기 구이), 카솔레트 프랭세스(공주식 향로형 사기그릇 요리)"
에코는 또 알렉산드르 뒤마의 글을 빌어 프랑스식 바다거북 수프의 조리법도 소개하고 있다.
"... 먼저 바다거북을 뒤집어 놓는다. 거북은 목을 길게 뺄 것이고, 그 틈을 타 머리를 삭둑 잘라낸 다음 열두 시간 동안 거꾸로 매달아 피를 뺀다. 그런 뒤에는 등딱지가 아래로 가도록 다시 뒤집어 놓고, 배딱지와 등딱지 사이로 단단한 칼을 쑤셔 넣되, 쓸개에 구멍을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쓸개즙이 흐르면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딱지를 떼어 낸 뒤에는 내장을 들어내되 간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간에 들어있는 걸쭉한 액체는 아무 쓸모가 없지만 살이 두툼한 두 간엽은 그 빛깔로 보나 맛으로 보나 송아지 넓적다리 고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물갈퀴와 다리와 목을 잘라내고, 몸통의 살코기를 호두 크기로 썰어서 물에 담가 피를 뺀 다음, 육수 속에 넣고 후추와 정향, 당근, 백리향, 월계수 잎을 첨가하여 서너 시간 동안 은근한 불에 익혀야 한다. 그러는 동안 닭고기를 얇게 썰어 파슬리와 작은 양파와 안초비로 양념한 뒤에 끓는 육수에 넣고 익힌 다음, 그 것들을 건져내어 물기를 빼고 그 위에 바다거북 스프를 붓는다. 그 전에 수프에는 단맛이 나지 않는 마데이라 포도주를 서너 잔 붓는다. 마데이라가 없을 때는 마르살라 포도주와 함께 브랜디나 럼을 작은 작은 잔에 따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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