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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어머니 날'에 얽힌 5가지 얘기들curiosity 2020. 5. 8. 07:38
5월 8일이 한국에서는 '어버이 날'이다. 하지만 그 유래는 '어머니 날'이다. '어머니 날'은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미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그래프턴(Grafton) 마을에 살던 안나 자비스(Anna Jarvis, 1864-1948)가 만들었다.
어머니가 죽은 후 그 죽음을 추모한 끝에 매년 어머니의 기일에 즈음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머니의 사랑과 노고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것이 그 유래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어머니 날'의 창시자를 안나 자비스로 공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1914년 윌슨 대통령 때 안나 자비스의 어머니를 기리는 정신을 높이 평가해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국가적 공휴일인 '어머니 날(Mother's Day)'로 선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머니 날'의 유래가 안나 자비스인 만큼 그녀의 어머니 은혜에 대한 사랑과 추모는 극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비스는 청교도적인 의식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원칙에 완고했다는 얘기인데, 그녀는 '어머니 날'이 제정되고 몇년 후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머니 날'을 반대하는 입장에 선다.
'어머니 날'의 '상업성'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어머니 날'과 안나 자비스를 둘러싸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이 외에도 '어머니 날'과 안나 자비스를 둘러싸고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는 안나 자비스의 '어머니 날'을 둘러싼 다섯가지의 다소 '충격적'인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다음은 그 다섯가지 내용이다.
1. 안나 자비스가 살았던 그래프턴의 옛집에 유령들이 출몰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비스의 옛 집은, 현재는 박물관(Anna Jarvis Museum)으로 개조되어 매년 5월의 주말에 즈음해 1,500명 정도의 방문객들이 다녀가는데, 이곳에서 유령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는 얘기다.
남편과 함께 박물관을 운영하는 올리버 리켓츠(Olive Ricketts)에 따르면 유령은 주로 이 옛집의 '마스터 벽장'에 나타나는데, 자신이 기르고 있는 두 마리의 개들이 그 지점에 이르면 멍하니 주시하는 것을 본 후 유령의 실재를 알았다고 한다. 출몰하는 유령은 자비스의 오빠인 알론조(Alonzo)도 있고 몇 명의 군인들도 있고, 또 자비스의 엄마인 앤 자비스(Ann Marie Jarvis)라는 것.
앤 자비스는 이 집에서 남북전쟁 당시 군인들을 돌봤다고 전해진다.
이곳의 유령 출몰에 대해서는 '고스트 버스터(ghost busters)'에 의해 확인돼 방송에까지 나왔다고 한다.
2. 자식이 어머니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어머니 날'이지만, 정작 창시자인 안나 자비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았었기에 그녀를 돌볼 자식이 한 명도 없었다.
그녀가 말년에 '어머니 날'의 상업성을 격렬히 비난하면서 어머니 날의 폐지를 주창하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어머니 날'의 상업성과 관련해 자비스는 어머니들을 위한 인쇄된 축하카드에 특히 민감했다. 한마디로 자식들의 성의가 담겨져있지 않다는 것이다. 원칙을 따지는 이런 지나친 관점에 자비스의 여동생도 가세했고, 둘은 어머니 날 폐지 캠페인을 격렬하게 벌였다.
자비스와 동생은 곤궁 속에 살다 갔다고 전해진다.
3. 자비스는 평생 남자를 증오하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한 그녀에게는 당연히 평생동안 단 한 차례의 구혼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녀가 남긴 편지 등의 어느 구석에서도 남자와의 어떤 로맨틱한 냄새를 풍기는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게 리켓츠의 전언이다.
자비스가 남자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남자들의 어머니를 보는 관점이다. 어머니는 그저 집에서 밥이나 하고 가족들을 보살피는 존재로, 어머니 날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고 남자들이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 '어머니 날'의 창시자라면 자비스에게는 착하고 선한 이미지가 그려지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친절했지만 완고한 고집의 소유자였다.
자비스는 '어머니 날'과 관련해 두 가지 완전히 상반된 삶을 살았는데, '어머니 날' 제정 즈음의 어머니를 추모하고 기리는 그 때의 자비스와 그 후 어머니 날의 상업성을 비판하면서 '어머니 날'에 반대해 돌아선 또 다른 모습의 자비스이다.
그녀는 '어머니 날'의 상징인 카네이션 판매업자의 꽃 배달을 물리적으로 방해하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적어도 한 차례 이상 구속된 적도 있었다.
5. 카네이션이 '어머니 날'의 상징이라면, 자비스는 그 상징을 만든 사람이다. 자비스는 어머니가 죽은 후 묘소에 흰 카네이션을 바친 후 그 꽃을 가슴에 달고 다니면서 '어머니 날' 제정에 나섰다.
이후 카네이션은 '어머니 날'의 상징이 되었다. 붉은 카네이션은 살아계신 어머니를 위한 꽃으로, 그리고 흰 카네이션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한 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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