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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첫 날, 묵주기도 28일 째
    村 學 究 2020. 6. 1. 08:02

    6월의 첫날이다.

    매일 새벽 기도와 명상으로 걷는 산책길에서 스치며 만나뵙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항상 분홍색 슈트를 입은 모습이기에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한달 전 처음 지나쳤을 때 상당히 불편한 걸음걸이의 모습이셨다. 지팡이에 의지해 느릿느릿 걸으시는 모습이 아마 다리나 관절, 허리 쪽에 이상이 있어 그러시는 걸로 보였다. 지나치면서 슬쩍 보는 얼굴도 그 안색이 안 좋으셨다. 항상 찌푸린 모습이었다.

    오늘 새벽, 내가 걷는 길을 한 바퀴 돌아서는데, 저 멀리 그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인사라도 한번 드려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문득 할머니의 표정이 떠 올라 그냥 그대로 지나치자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매일 걷는 그 방식 그대로의 패턴으로 걸었다. 할머니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까지의 모습이 아니다. 걷는 모습이 좀 활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새벽을 걸으시더니 몸이 좋아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바로 내 앞이었고 곧 바로 지나치실 것이었다. 그 때 본 할머니의 얼굴 표정도 전보다 훨씬 밝았다. 걸음걸이는 확실히 나아지셨다. 한 마디 던지고 인사를 드리려다 그만 뒀다. 할머니 만의 산책을 내가 방해할까 하는 우려에서다.

    며칠 전 비온 새벽길을 걷다가 진흙 길에서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묵주였다. 진흙탕 길에 내버려진 묵주였는데, 조심스럽게 집어 보았더니 일부가 끊어져 나간 볼품없는 묵주였다. 그 묵주가 가여워 보였다. 그 묵주를 그대로 흙탕 길 속에 내버려 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묵주를 길가 자잘한 돌 무더기 위에 조심스럽게 얹여 두었다.

    오늘 새벽 그 길을 걷다가 문득 그 날 버려둔 묵주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왜 그 때 그 묵주를 그렇게 방치했을까 하는 웬지 모를 자책감이 들었다. 그 묵주를 찾아야겠다며 길을 걸었다. 하지만 여섯 바퀴를 돌면서 찾아 보았으나, 그 묵주는 발견되지 않았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그 묵주를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회한과 함께 조바심이 일었다. 꼭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 길 어디엔가 분명히 그 묵주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었다. 내일도 모래도 이 길을 걸으며 찾아볼 것이다.

    오늘로 묵주기도 28일 째다. 청원기도를 마치는 날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나의 기도를 허락해 주신 주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님께 감사를 드린다. 한 가지 느껴지는 게 있다. 기도를 드리면 드릴 수록 마음이 홀가분해지지가 않고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닌데 상당한 피로감도 느껴진다. 이렇게 생각한다. 매일 바치는 묵주기도를 통해 겨자같은 신앙심이 자라 점차 자각될 수록 그동안 몰랐던 나의 죄악이 부각되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몸과 마음이 피곤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내일부터 감사의 기도로 들어간다. 매일 새로워지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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