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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그림들과 외사촌 형님
    컬 렉 션 2020. 6. 8. 08:02

    그림에 관해 잘 모른다. 어릴 적에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를 좀 들었는데, 커가면서 다 까먹고 내 살아가는 관심 밖의 일이 됐다. 그림 소질은 타고난다는 말이 있는데, 적어도 나의 경우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어릴 때 같이 그림을 하던 친구들이 미술대학엘 가는 바람에 주변에 그림하는 친구나 후배들은 좀 있다. 그래도 미술에는 여전히 문외한이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어도 이해의 폭이 남 달라 쉽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외사촌들 가운데 늦게 그림에 눈이 트인 형님이 한 분 있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수년 전부터 이따금씩 SNS 등을 통해 접해보는 그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지만 앞에서 얘기했듯 그림에는 과문한지라 그냥 대수롭잖게 여겨왔다. 그래도 그 수준에서 처음 형님의 그림을 보고 느낀 것은 기존의 작품을 베끼는 ‘모사(模寫)’ 수준의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사라도 썩 잘 그린 그림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는데, 형님이 이에 해당되는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 대구에서 집안 일로 형님을 볼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다.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가다 그 자리에서 형님의 그림을 접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그림이었다. 화면이 적어 디테일하게는 볼 수 없었지만, 한 눈에 그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림은 일종의 종교화다. 어느 조그만 교회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다. 나중에 듣기로, 이 그림은 형님의 둘째 아들이 뉴욕 카네기 홀의 한 찬양연주회 때 어떤 누나뻘 되는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을 찍어 형님에게 의뢰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쉐카이나 영광'(이 낙천 畵) Oil on Canvas

     

    이 그림을 처음 보고 퍼뜩 느껴져 온 것은 빛이다. 교회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휘뿌연 엷은 햇살이, 검은 옷을 입은 여자의 기도 드리는 모습에 어우러져 아늑함, 혹은 신비감을 자아내도록 한 빛의 묘사가 좋았다. 그 빛의 처리가 이 그림에 아늑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생각이다. 문외한의 생각이지만 그림에 있어 빛의 처리는 중요하다. 중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처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님은 그만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 아닌가.


    형님의 그 그림에서 연상되어지는 그림이 있다. 15세기 프랑스의 종교화가 조르쥬 드 라 투르의 ‘막달레나’ 그림들이다. 그 그림들 중의 하나인 ‘등불아래 참회하는 막달레나(The Penitent Magdalen with Night Light)’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의 하나다. 이 그림의 백미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견지로는 역시 빛의 처리다. 어둠과 빛을 절묘하게 결합함으로써, 막달레나의 예수를 향한 신심의 깊이를 한층 더 깊게 하고 있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깊은 내적 성찰을 유도하는 그림이다.

     

    '등불아래 참회하는 막달레나(The Penitent Magdalen with Night Light)'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나의 이런 말 같지(?) 않은 평가에 형님이 좀 고무되었나 보다. 그 날 헤어진 후 형님은 또 다른 그림을 나에게 보내왔다. 교회 전시회 때 준비했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역시 빛의 처리가 돋보이는 그림으로 마음에 다가오는 그림이다. 언제 시간나면 실물 작품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만성, 대기만성하는데, 형님의 이런 노년의 모습에 딱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형님의 호도 ‘만성’이다. 대기만성의 그 만성은 아닌 것 같지만. 형님은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의 1.5세대 쯤 된다. 내로라하는 기업의 임원도 거쳤다. 그러나 십 수년 전 쯤 홀연히 모든 것을 접고 경북 영천 땅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내 인생에 가장 잘 한 선택은 모든 것을 접고 내려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일이다.” 형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보고 듣기에 후회없는 삶을 살고 계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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