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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즐기는 한 고등학교 후배가 있다. 그리 잘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다.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과 마라톤 유명세 탓으로 여기 저기 오르 내리는 그 후배의 이름 석 자, 딱 그 정도로만 알고있는 처지다. 이 후배는 보기에 마라톤 풀 코스를 아주 쉽게 뛴다. 풀 코스 완주만 70회 정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후배는 마라톤 완주를 한 후에 자신의 SNS에 후기를 올린다. 그 글들에서 가끔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바로 "몸이 답이다"는 것. 처음 그 대목을 접했을 때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그런데 몇 번 접하니까, 나름으로 이해되는 구석이 있었다. 그 말은 마라톤을 완주케 한 자기 몸에 대한 자신감일 것이다. 42.195km를 뛰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런 저런 거 따질 필요없이 몸 그 자체라는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몸과 그에 따른 건강상태를 놓고 이 외에 어떤 또 다른 표현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자신의 몸은 자신이 잘 안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즈음에 와서 그 후배의 그 말이 자꾸 떠 오르면서 입에 되 뇌여진다. 그 이유가 있다. 내 몸 상태에 대한 어떤 불확실성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몸 여기 저기서 이상 신호를 보낸다. 그런 신호에 민감해질 나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젖가슴 쪽이 이상했다. 처음에는 기분 나쁜 근질거림 때문에 신경을 쓰게 하더니, 조금 지나니 만지면 아파왔다. 남자에게도 유방암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생각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가슴 위 쪽으로 연결되는 임파선 쪽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파스를 부쳤다. 그래도 여의치 않아 항생제 연고를 젖가슴 부위에 넓게 발랐다. 그래도 그 증상은 계속됐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증상이 사라졌다. 무슨 일에 몰두해 신경을 썼더니 나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원인은 알 수가 없다. 이것 뿐이 아니다.
몇 군데 다른 부위에서도 그런 걸 경험했다. 그 가운데는 물론 원인이 있는 증상도 있다. 이를테면 오른 쪽 입 근육 통증이 왔는데, 이는 뭘 잘못 씹었다든가, 너무 세게 씹은 탓에 연유한 것이다. 그런 경우는 원인에 따른 치료를 하면 된다. 하지만, 마음은 불안하다. 다른 쪽으로 생각하는 버릇 때문이다. 오래 전에 구강 쪽의 복잡한 암으로 세상을 뜬 친구의 첫 증상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 또한 며칠 안 가 그 증상이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이런 류의 증상들로 인해 복잡하고 불안해지는 심리를 '몸이 답이다'가 나무라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이 말이 입에 맴도는 이유이고, 그럼으로써 뭔가 훤해지는 느낌이라 할까, 좀 막연하지만 무언가가 극복해지고 있다는 얘기인데, 바로 '몸이 답이다'라는 데서 그게 찾아지고 있는 느낌인 것이다.
'몸이 답이다'는 내 몸에 대한 신뢰감을 키우는 것이다. 그 신뢰감은 자신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이런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다. 몸 상태에 대한 지나친 선입감이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증상을 지레 짐작해 불안감을 스스로 키우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그런 선입감을 바로 '몸이 답이다'로 해소해 나가는 것이다. 몸이 답이 되려면 몸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자기 몸을 올바로 아는 데서 비롯되는 몸과의 소통이 불안한 선입관을 없애주는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있는 그 상태로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몸과의 소통의 시작일 것이다. 몸 가자는대로 따라 가자는 것이다.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면 그 속에 해결책이 있지 않겠는가. 몸을 따라가는 순리는 곧 마음의 순리이기도 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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