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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산책에 나서는 길은 동네에 있는 생태습지 공원이다. 목재 데크 길로 조성을 해 놓은 곳인데, 그리 길지가 않고 뱅뱅 도는 길이다. 여기서 매일 어떤 분을 만난다. 내 또래 쯤 된 분인데, 혼자서 걷는게 나에 비해 상당히 활력이 있고 걸음걸이도 빠르다.
데크 길을 뱅뱅 도는 것이니 어느 지점에서인가 몇 차례 서로 마주치며 지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인가 마주치는 걸 꺼려하는 걸 알았다. 이유는 이 분에게서 유난히 크게 들려나오는 대중가요 때문이었을 것이다. 닐리리 맘보도 있고, 매화타령도 있고, 하여튼 별 노래가 이 분 포켓으로부터 나온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걸 들으며 걷는 것인데, 아침부터 듣기에는 좀 요상스런 노래들이라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몇 차례 어쩔 수 없이 마주쳐 지나쳤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좀 멀찍히 마주치려 하는데, 내가 아차하며 나도 모르게 좀 움칠했다. 그런데 보기에 그 양반도 움칠대는 것 같았다. 내가 그런 노래 듣기를 싫어하는 걸 알아 챈 모양이다. 결국 내가 선수(?)를 쳐 옆 길로 빠졌고, 그 분은 내가 빠지는 걸 보더니 그냥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홀로 산행을 즐기는 나도 가끔 스마트폰 음악을 이어폰 끼지 않고 그냥 들으며 산을 오른다. 클래식도 있고 유행가도 있는데, 좀 지루할 땐 흘러간 대중가요를 듣는다. 마주치는 산행객들이 많은데도 산을 그렇게 많이 오르내렸다. 새벽 산책길에서 내가 그 분의 음악을 소음으로 여겼던 만큼이나, 나와 마주치며 지나치는 그 산행객들도 내가 틀어놓은 음악을 소음으로 여겼을 것이다.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새벽 산책길에서의 그 사람 하는 짓이 나에게는 타산지석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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