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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산책 길에 무지개를 만났다. 길에는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태풍의 여파일 것인데, 그런 줄 모르고 우산도 안 들고 나왔다. 인적없는 길에서 몰아치는 비바람을 맞고 있으니 흡사 무변광대의 광야에 선 상쾌한 기분이었다. '마리아수도회' 성당을 보며 왔다 갔다 하다가 방향을 바꿔 성당을 측면에서 보고 걷는 길로 접어들었다.
새벽산책은 내 나름의 기도 길이기도 하다. 거의 매일 바치는 기도 내지 바람에는 이런 저런 게 있다. 그 중에는 주변의 아픈 분, 그리고 세상을 뜬 분을 위한 것도 있는데, 아마도 이 두 주제로 그러는 중이었을 것이다. 비는 소강상태였지만, 계속 내리고 있어 움츠리며 걷고 있는데, 왼쪽, 그러니까 성당 쪽에서 시선을 끌게하는 뭔가가 느껴졌다.
부지불식 간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무지개였다. 흐린 하늘에 무지개가 살포시 떠 있는 것이다. 아름답고도 신기. 신비한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 동안을 쳐다 보았다. 엷은 무지개는 성당 건물 바로 위에서 솟아 크고 넓게 반원형으로 떠 올라 있었다. 반대편 하늘은 시커면 비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편 저편 하늘을 보고 한참을 서 있는데, 몇몇 아주머니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진을 찍고있는 내 곁으로 왔다. 그리고는 묻는다. "저 무지개가 사진에 잡히나요?" 내가 대답을 옳게 해 줬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무지개에 빠져있었기 때문인데, 아주머니들에게는 미안하다.
아내에게 무지개를 빨리 얘기해주고 싶었다. 집으로 와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그 말을 꺼내려는데, 아내가 먼저 말을 한다. "보속 씨 조금 전에 돌아가셨대요." 아내 친구의 남편 되는 분으로 나와도 잘 아는 사이인데, 말기암을 앓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지개를 볼 즈음에 그 분의 병이 나아지기를 기도 드리던 중이었을 것이다. 무지개를 타고 좋은 곳으로 갔을 것으로 믿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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