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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자이 오사무(太 宰治)의 '가을,' 혹은 '아, 가을'
    컬 렉 션 2020. 11. 2. 08:26

    가을이면 떠올려지는 한 편의 수필이 있다. 반드시 떠올려지는 글이다. 다자이 오사무(太 宰治. 1909-1948)의 '가을'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의 그 시대를 대변하듯, 그의 작품들에는 일관하게 흐르는 분위기가 있다. 바로 황량함이다. 그의 소설 '사양'이 그렇고 '인간실격'도 그렇다. 그 또한 황량함과 허망감을 주체하지 못 해 3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자살로 마감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가을' 이 수필 또한 황량하기 그지 없다.

    가을에 그가 보고 대하는 모든 것은 황량함이다. 코스모스가 그렇고, 유카다를 입은 여인도 그렇다. 농가도 그렇고 먼 들판도 그러하다. 다자이 오사무는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고 쓰고 있다. '초토(焦土)'라고도 했다. 지난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폭염이라고 했다. 폭염이 타고 남으면 무엇이 될까. 불을 불로 태우는 격이다. 가학적이다. 가학이 더 해진 초토의 가을인가. 그래서인가, 올 해 가을은 더 황량한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의 '가을'을 처음 대한 건 1960년 대 '삼성당'에서 출간된 '전후세계문학전집'의 일본 편에서다. 여기 이 글이 포함돼 있다. 그 시절 일본어 번역에 능통했던 신동문 선생이 맛깔스럽게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다자이 오사무의 '가을'을 좀 더 살펴 봤더니, 신동문 선생의 번역 편과는 좀 다른 게 있다. 제목도 '가을'이 아니라 '아, 가을'이다.

    말하자면 오리지널 원본인 것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니 신 선생의 번역 편은 축약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축약된 선생의 번역 편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것 만으로도 다자이 오사무의 가을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충분히 전달되는 작품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1) (2)로 구분해 보았다.

     

    (1)

    '가', 가을部의 노트를 꺼내 본다.

    '잠자리, 투명하다'고 써 있다.

    가을이 되면 잠자리도 쇠약하여 肉體는 죽고 精神만이

    너훌 너훌 날아다니는 것만 같은 모습을 가리킨 말인 것 같다.

    잠자리의 모습이 가을 햇살에 투명하게 보인다.

    '가을은 여름의 타고 남은 것'이라고 써 있다. 焦土이다.

    '여름은 샨데리아, 가을은 燈籠'이라고도 써 있다.

    '코스모스, 無慘'이라고 써 있다.

    언젠가 郊外의 국수집에서 모밀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食卓 위의 낡은 그라프를 펼쳐 보았는데 그 속에 大震災의 사진이 있었다.

    四方이 타다 남은 벌판인데 유까다를 입은 여자가 혼자서 지친듯 앉아 있었다.

    나는 가슴이 타서 재가 되는 것같이 그 처참한 여자를 그리워했다.

    사나운 情慾조차 느끼었다.

    悲慘과 情慾은 등과 배 같은 것인 모양이다.

    숨이 멎을 듯이 괴로웠었다.

    시들은 벌판에서 코스모스를 만나면 나는 그 것과 꼭 같은 고통을 느낀다.

    가을의 나팔꽃도 코스모스와 같을 정도로 나를 단번에 窒息시킨다.

     

    (2)

    본직이 시인이라면 언제 어떤 주문이 있을는지 모르므로 항상 시재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가을에 대하여」 라는 주문을 받으면, 그래 좋아, 하면서 「가」의 서랍을 열고, 가 줄의 여러개 노트 중에서 가을 부문 노트를 꺼내놓고는 침착하게 그 노트를 살핀다.잠자리, 투명하다, 라고 쓰여 있다.가을이 되면 잠자리도 나약해져서 육체는 죽은 채 정신만으로 비틀비틀 날고 있는 모습을 가리켜 한 말 같다. 잠자리의 몸이 가을 햇빛에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 이라 쓰여 있다. 초토(焦土)다.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燈籠), 이라고도 쓰여 있다.코스모스, 무참하다, 라고도 쓰여 있다.

    언제였던가, 교외의 메밀국수집에서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식탁 위의 낡은 화보를 열어보았더니 그 속에 처절한 사진이 있었다. 전체가 타버린 들판, 바둑판무늬 유카타(浴衣)를 입은 여인이 달랑 혼자서 피곤에 지쳐 주저앉아 있었다. 난 가슴이 타들어갈 만큼 딱한 여인을 사랑했다. 무섭도록 욕정마저 느꼈다. 비참과 욕정은 표리인 모양이다. 숨이 막힐 만큼 괴로웠다.

    빈들의 코스모스를 만나면 나는 그와 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가을의 나팔꽃도 코스모스와 거의 비슷하게 나를 잠시 숨 막히게 합니다.가을은 여름과 동시에 닥쳐온다, 라고 쓰여 있다.여름 동안 가을은 이미 몰래 숨어 들어와 있는데, 사람들은 폭염에 속아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없는 것이다. 주의깊게 귀 기울여 보면, 여름이 되자마자 벌레가 울고, 정신 차려 마당을 들여다보노라면, 도라지꽃도 여름이 되자마자 피어있는 걸 발견하게 되고, 잠자리 또한 원래 여름 벌레이며, 감도 여름 동안 착실하게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가을은 교활한 악마다. 여름 동안 치장을 모두 하고는 비웃으며 쪼그리고 앉아있다. 나 정도로 날카로운 눈을 가진 시인이면 그것을 간파할 수 있다. 아내가 여름을 좋아하면서, 바다에 갈까 산으로 갈까 들떠 있는 걸 보면 딱한 생각이 든다. 벌써 가을이 여름과 함께 몰래 들어와 있는데. 여름은 끈질긴 괴물이다.괴담 좋지. 안마, 여보세요, 여보세요.

    손짓하다, 갈대, 저 뒤에는 틀림없이 묘지가 있습니다.

    노문(路問) 에바, 여자 벙어리임, 마른 들판.

    뜻을 잘 알 수 없는 게 이것저것 쓰여 있다. 뭔가의 메모일텐데 나 스스로도 쓴 동기를 모르겠다.창밖, 마당의 흑토위를 바삭바삭 기어 돌아다니는 흉한 가을 나비를 본다. 월등하게 튼튼하기 때문에 죽지 않고 있다. 결코 덧없는 모양은 아니다. 라고 쓰여 있다.이걸 썼을 때 나는 무척이나 괴로웠다. 언제 써넣었는지 난 결코 잊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으련다.

    버려진 바다, 라고 쓰여 있다.가을 해수욕장에 가 본적이 있습니까. 바닷가에 찢어진 양산이 떠밀려와, 환락의 흔적, 히노마루 등도 버려지고, 머리핀, 종잇조각, 레코드 파편, 우유 빈병, 바다는 불그스름하게 탁해져서 철썩철썩 파도치고 있었다.오가타(緒方)씨에게는 아이가 있었지요.

    가을이 되면 피부가 마르고, 그립습니다.

    비행기는 가을이 제일 좋다고요.이것도 뭔지 의미를 잘 모르겠으나, 가의 대화를 훔쳐 듣고 그대로 적어놓았던 모양이다.또 이런 것도 있다.예술가는 늘 약자의 친구였을 터인데.전혀 가을과 관계없는 그따위 말까지 쓰여 있는데, 어쩌면 이것도, 「계절의 사상」이라는 뜻의 말인지 모르겠다.그 밖에,

    농가, 그림책, 가을과 군인, 가을의 누에, 화재, 연기, 절,어수선하게 잔뜩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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