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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그리고 그 옥상의 맛집, '포석정'
    세상사는 이야기 2021. 2. 9. 13:09

    서울 반포의 고속버스터미널은 서울역과 함께 누구나에게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떠나고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지방에 둔 출향민의 처지에서는 더 그렇다. 타향살이의 울적한 심사들이 모아져 고향으로 보내지는 곳이다.

    1970년 공부하러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땐, 서울역 한 곳이 올라오고 내려가는 플랫폼이었다. 그 때 경부선 밤차로 '은하호'가 있었다. 서울시내에서 한 잔을 걸치고 이슥해지는 밤, 취기가 오르면 뭔가 말로는 표현 못할 향수가 등을 서울역으로 떠민다. 밤 10시 '은하호'를 무작정 탄다. 다음 날 새벽이면 삼랑진을 경유해 넓직한 바다가 보이는 고향 마산에 도착한다.

    1970년에 고속버스가 운행되면서는 서울역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갈아탔다.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버스가 어릴 적부터 익숙한 탓에 고속버스를 기차보다 선호한 탓이다. 군 생활 3년을 제외한 47년의 서울 생활에서 고속버스터미널을 얼마나 들락거렸을까.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러니 서울 도심에 위치한 고속버스터미널일 지언정 흡사 집 뒤에 있는 곳처럼 정감이 가는 곳이다.

    어제 갑자기 그곳에 갈 일이 생겼다. 마산에 계신 한 선배님이 설 명절 연휴를 맞아 올라오시기에 그곳에서들 만나자고들 한 것이다. 약속장소는 터미널 옥상 '포석정'이라는 음식점이다. 옥상, 그것도 터미널 옥상에 그런 곳이 있을 줄 생각도 못했고 그래서 긴가민가했다. 그래서 좀 찾아 보았다. 그랬더니, 그곳이 그 나름 서울의 맛집 가운데 한 곳으로 올라 와 있었다.

    원래 주차장 음식점과 음식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이 좀 있다. '포석정'에 도착해서까지 그런 선입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터미널 옥상은 굉장히 넓었다. 거기 한 곳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포석정'의 외양은 특별히 드러내 놓을만한 건 보이지 않는 수수한 식당 겸 주점이었다.

    '포석정'은 고기 집이다. 지리산 흑돼지가 이 집의 메인 메뉴인데, 생고기 구이와 두루치기로 내 놓는다. 물론 한우도 있고 소머리 국밥도 있다. 하지만 종업원이 추천하는 건 지리산 흑돼지다. 우리들은 생고기 구이와 두루치기를 각각 시켰다. 몇 가지 밑반찬이 나온다. 오이무침, 콩나물, 양파장아찌, 김치 등인데, 그런대로 맛깔스럽다.

    지리산 흑돼지는 생각보다 신선했다. 고기부위 빛깔이 선홍색인게 조금 구우니 열기에 오그라드는 모양새가 싱싱하게 구워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한 점 먹어보고는 좀 놀랐다.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한 게 맛있다. 다들 맛있다고 했다. 두루치기는 원래 좋은 고기에다 양념 맛이 좋았다. 두루치기는 고기도 중요하지만 양념이 맛을 좌우한다. 너무 달거나 짜도 안 된다. 이 집 두루치기는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약간 단듯 하면서도 뭔가 톡쏘는 매운 맛이라 안주로 좋았다.

    우리들 일행은 선배 두 분을 포함해 5명이다. 선배 올라오시기에 모였지만, 기실은 갑작스레 소집된 모임이었다. 선배 상경은 별도로 치고 뭔가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있어야 했던게 아닌가 싶다. 뭐로 할까. 낼 모래가 설이나 그러면 ‘작은 설’ 모임으로 하자했다.

    마산서 올라온 선배는 오랜 만이다. 반가운 마음에 잔들을 많이 부닥쳤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올라올 무렵, 화장실을 가려 밖으로 나갔더니 아, 여기도 옥상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 정도로 쾌적하고 좋았다. 이 집을 좀 아는 선배 말로는 코로나 전에는 바깥에 상을 펴고 마시는 맛이 괜찮았다고 한다. 그럴만도 하겠다. 수십 억 짜리 아파트들을 한 눈에 내려보고 마시는 술이라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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