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개, 혹은 '주구(走狗)'
    時事 터치 2021. 5. 6. 07:27

    말과 글은 시대를 탄다. 분명 사전적으로 존재하는 말이고 단어이지만, 안 쓰이는 것도 많다. 그러다 시대의 흐름에 요구되면 그런 말과 글이 나타난다. '주구(走狗)'라는 말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주구는 한자 뜻 그대로 달리는 개를 일컫는 단어인데, 개 주인이 시키는 대로 달리는 개다. 그 뜻대로 하자면, 사냥 개가 이에 해당할 것이고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앞잡이, 끄나풀 정도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지는 거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그리 자주 쓰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좀 생소한 단어라 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로 이 단어는 예전부터 우리보다는 북한 쪽에서 많이 사용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북한 선전도구의 대남 비방에 많이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남한 정부가 미국의 괴뢰라는 의미로 비방을 할 때 '미제(미 제국주의의 주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지금도 북한 선전매체는 심심찮게 주구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1970년 대 중반, 북한관련 일을 할 적에 처음 이 단어를 접하면서 좀 생경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북한 인쇄매체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금방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북한의 영자신문인 '평양타임스(Pyongyang Times)'에 주구를 'running dog'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뜻과 한자가 그런 것인지 알게됐다.

    그런데 네이브로 검색을 해 보면 주구의 영문은 'haunting dog'으로 나온다. 의아해서 좀 더 찾아 봤더니, 주구의 중국식 영문 표기가 'running dog'였다. 모든 면에서 북한은 중국에 가깝기 때문에 북한도 중국을 따라 'running dog'로 쓰고 있는 것이구나 하고 이해하고 있다.

     

    글이 좀 길어졌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근자에 우리 언론이나 사회단체의 구호 등에도 주구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인데 어째 쓰다보니 그렇게 됐다. 이 단어가 어떤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강하게 비방할 때 쓰여진다는 점에서, 이 말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거칠고 험악해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좌우 이념으로 편 가르기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주구라는 이 말은 상대를 헐뜯고자 함에 있어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말이 좌우 따로 가릴 것 없이 서로들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주 등장하는 게 검찰은 '권력의 주구'이고 언론은 '주구 언론'인데, 좌파와 우파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서로들 상대방을 희롱하면서 비방할 때 번갈아 사용하는 고정메뉴가 됐다.

     

     

                                                                       (경향신문 사진)

     

     

    .....................................................................................................................................................................................

     

    '대통령은 북조선의 개'라는 등의 말로 문재인과 청와대가 발끈해 고소 소동을 벌이다 여론에 떠밀려 결국 철회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국가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국민을 고소했다가 이를 철회하면서 뒤끝을 가진양 궁시렁대는 것을 포함해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이래 저래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인다.

     

     

    고소의 배경과 관련해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혐오와 조롱을 떠나 국격과 국민명예, 남북관계 등 국가미래에 끼치는 해악 등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여러 문구들 가운데 일본 극우잡지를 인용한 '대통령은 북조선의 개'라는 표현이 대통령을 극도의 분통으로 몰아가게 한 것 같다.

     

    문 대통령이 화를 낼만도 할 것이다. 누구누구의 개라는 표현을 좀 구체적으로 다듬어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주구(走狗)'를 말하는 것이다. 주인이 달려라 하면 달리고, 물어라 하면 주인의 적을 물기도 하는 개를 말하는 것인데, 영어로도 말 그대로 'running-dog'라고 적기도 한다.

     

    문 대통령이 발끈해하는 분노의 배경이 한편으로 이해는 된다. 그 말 표현대로 하자면 문 대통령의 상전은 북한, 더 구체적으로 김정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그냥 단순히 문 대통령을 욕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 아닌 것임을 국민들은 잘 알고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지금껏 보여주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저자세에 국민들이 그걸 옳게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국민적 분노의 감정을 문 대통령이라고 모를리가 없다. 그런데도 오히려 발끈해하며 법적 조치까지를 들고나왔던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런 견해들이 있다. 정곡을 찔린 것에 대한 수치감의 어떤 발로가 아니겠냐는 것.

     

    그 수치감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삭일 수도 없고, 드러낼 수도 없고. 그 수치감을 대통령에 의한 '고소'라는 법적 조치의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방식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최악의 수였다. 그런 이치에도 맞지않는 돈키호테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려다 오히려 제 살을 깎아먹는 역풍을 맞은 것이다.

     

    아무튼 이런 해프닝 속에 엉뚱하게 구설수에 올라 고생하는 건 개, 혹은 '주구'다. 말 그래도 '개고생'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