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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香 가득한 '김훈 식' 라면 끓이기먹 거리 2021. 8. 13. 19:37
책 제목에 이끌리어 가끔씩 보게되는 책이 더러 있다.
소설가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라는 책도 그 중의 하나다.
라면은 나에게는 극복의 대상이다. ‘망설임의 먹거리’라는 얘기다.
라면은 맛 있다. 그 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그래서 때때로 먹기도 하지만, 먹고나면 또한 후회되는 게 또한 라면이다.
속이 더부룩한 것도 그렇지만, 일반 건강상식에서 라면의 부정적인 측면 자주 건드리는 게 신경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라면을 좀 더 건강하게 또는 맛 있게 끓이는 방법을 좀 찾아보기도 하는데,
김훈의 <라면 끓이기>라는 책도 그런 과정에서 흥미를 갖고 보게 된 것이다.
김훈의 이 책은 타이틀을 라면으로 하고 있지만,정작 책 내용에 있어서 라면에 관한 글은 딱 한 꼭지고 나머지는 일반 먹거리에 대한 김훈의 단상을 적고 있다.
그래서 읽으며 흥미가 좀 반감된 측면도 있으나 한 가지는 건졌다.
그것은 김훈 나름의 라면 끓이기 방식이다.
그 맛이 어떨까하는 호기심에 그 방식대로 끓여 보았더니 내 구미에는 맞았다.
특히 대파가 듬뿍 들어가는 라면 레시피였기에 대파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더 그랬다.
그래서 김훈 식 라면 끓이기 레시피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먼저 라면인데, 김훈은 이니셜로 슬쩍 처리했지만 보기에 ‘A탕면’을 즐겨 먹는 것 같다.여기에 대파와 계란이면 재료는 끝이다. 김훈 라면의 중점적인 부분은 대파를 어떻게 넣어 해 먹는가인데,
김훈은 좀 까다로운 방식을 요구한다. 그냥 숭숭 썰어 넣는 것은 아니다.
대파도 뿌리의 흰색 부분을 권하고 있다. 파 향이 짙기 때문이다.
대파의 그 부분을 손가락 검지 크기로 자른다. 그리고는 세로썰기로 채 썰듯 한다.
가늘게 썰 수록 좋다 (이 부분은 직접 해 보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대파의 양은 많을 수록 좋다. 다다익선인 셈이다.
나는 대파의 파란 잎사귀도 좀 보탰다. 때깔 좋은 게 더 맛 있겠지 하는 생각에서다.
이 부분은 각자의 기호에 따 준비하면 되겠다.
김훈은 라면 끓이는 용기로 양은냄비를 권하고 있다.강한 불의 화력이 빨리 전도돼 끓이는 시간과 속도의 중량감을 더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여지는데,
여기에는 소설가 김훈으로서의 ‘라면은 역시 양은냄비’라는 작가적인 감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양은냄비의 물은 강한 화력으로 끓인다.
'김훈 식' 라면에서 또한 중요한 부분은 바로 타이밍이다.
김훈 라면의 타이밍은 4분 30초다. 이 시간을 중요시하고 있다.
4분 30초도 두 부분으로 나눈다. 물이 팔팔 끓고 있을 때 라면과 스프를 넣고는 2분을 기다린다.
2분 후 썰어놓은 대파를 투입한다. 그리고 2분 30초를 끓인다. 이게 전부다.
라면에 계란이 빠질 수가 없다. 계란은 당연히 불을 끈 후에 넣는다.
계란은 끓여진 라면에 넣은 후 휘휘 저어 푼다. 김훈 라면의 타이밍은 4분 30초지만,
계란 넣고 젖는 것을 감안했을 때 그보다는 조금 더 걸린다고 봐야 한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김훈은 끓여진 라면을 즉석에서 바로 먹지 않는다.
뚜껑을 덮은 채로 약간의 뜸을 들일 것을 권하고 있다.
김훈 식 라면을 먹어 본 소감은 이렇다. 우선 냄비 뚜껑을 열었을 때 확 풍겨지는 게 있다. 파 향(香)이다.이 파 향은 사람의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식욕을 확 끌어당기는 요소로 느껴졌다.
파 향이 먹는 내내 입안을 감도는 게 좋았다. 국물도 더 얼큰한 맛을 준다.
라면은 술 마시고 난 후의 해장 음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김훈의 이 라면은 정말 해장에 좋았다.
면발도 탱글탱글하다. 최대한의 화력으로 물이 팔팔 끓고 있을 때 라면을 넣고 4분 30초 동안 내내
그 화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하나 빠뜨린 게 있다.
물의 양인데, 김훈은 물을 좀 넉넉하게 잡을 것을 권한다. 대파가 끓으며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평소 때 처럼의 물로 김훈 식 레시피로 라면을 끓여 봤는데, 좀 뻑뻑했다. 국물이 모자랐다는 얘기다.
김훈 식의 이 라면 레시피로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어느 해 11월 초 지리산 종주 때 친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틀 간을 걸어 천왕봉 등정을 위해 장터목 대피소에서 하루를 묵었다.
새벽 산행을 앞두고는 잘 먹어야 한다. 그 때 내가 끓인 게 라면인데, 바로 김훈 식 레시피를 사용한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서 먹는 라면이라면, 그 어떤 게 맛 없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친구들은 거짓말 좀 보태 허겁지겁 잘도 먹었다.
우리 일행은 8명이라, 8인분을 끓였는데, 그렇게 많은 양의 라면을,
그것도 김훈 식으로 끓이면서 걱정도 좀 됐지만, 친구들이 맛나게 먹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의기양양해 졌다.
아무튼 친구들은 지금도 한번 씩 지리산 장터목에서 먹었던 그 라면 얘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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