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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7) 일본, 美 진주만 공습(1941)today in world history 2021. 12. 7. 13:31
12월 7일 오늘은 일본군이 미국의 하와이를 기습공격한지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7시 55분(하와이 시간), 하와이 오아후 섬 상공 구름 사이로 붉은 일본 욱일승천기를 날개에 새긴 일본 잠수폭격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폭격기 뒤로 360대의 일본 전투기가 맹렬한 속도로 진주만의 미 해군기지를 목표로 공격을 위한 하강을 하고 있었고, 이어 맹렬한 기습공격이 시작됐다.
이 기습공격은 미 태평양 함대에 치명타를 입혔고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한 명분이 된다.
이 공습의 기미는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일본과의 외교협상이 결렬되면서 일본의 공격이 임박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진주만의 중요한 해군기지의 경계와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이날은 일요일 아침이었고, 많은 군인들은 예배와 미사 등 주일 종교행사를 위해 기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오전 7시 2분, 두 명의 미군 레이더 조종사가 북쪽에서 섬을 향해 비행 중인 대형 항공기들을 포착했지만, 당시 미 공군 B-17의 비행이 예상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경보를 울리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따라서 일본군의 공습은 미 해군기지에 대한 기습공격이었다.
일본의 이 기습공격으로 미 태평양함대의 대부분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 사고로 전함 8척 중 5척과 구축함 3척, 기타 7척이 침몰하거나 큰 피해를 입었으며, 항공기 200여대가 파괴됐다. 많은 병사들이 기습공격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공격을 물리치려했으나, 미군 2,400명이 사망하고 1,200명이 부상을 입는 등 인명 손실이 엄청 컸다. 일본의 손실은 비행기 30대, 잠수함 5대, 병력 100명 미만이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미국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태평양 함대 3척이 모두 해상에 나와 훈련기동을 하고 있었다.
이 항공모함들은 6개월 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에 대한 치명적인 복수를 함으로써 일본해군을 패전으로 몰아갔고, 태평양 전쟁의 승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진주만이 폭격당한 그 다음 날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 출석,
"어제 1941년 12월 7일, 미국이 갑자기 일본 제국의 해군과 공군의 공격을 받았다"고 선언했다.
짧고 힘찬 연설 후, 루스벨트는 미. 일 간의 전쟁 상태를 선포하는 결의안을 승인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상원은 대일 전쟁 찬반투표에서 82대 0으로, 하원은 388대 1로 결의안을 가결했다.
미국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에 반대했던 독실한 평화주의자인 몬태나 주의 자넷 랭킨(Jannette Rankin) 하원의원이 유일한 반대자였다.
3일 뒤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고, 미국도 선전포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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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istory.com/this-day-in-history/pearl-harbor-bom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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