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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0) 티베트, 중국에 무장 봉기(1959)today in world history 2021. 3. 10. 13:04
3월 10일 오늘은, 62년 전 중국인민해방군(PLA)에 의해 침탈당한 티베트가 중국의 강압적인 통치에 항거해 봉기를 일으킨 날입니다. 1959년 이날 티베트인들은 중국 점령군에 저항하여 수도 라싸의 달라이 라마 여름 궁전을 둘러싸고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습니다.
티베트인들의 봉기는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한지 거의 10년 만의 중국에 반대하는 항쟁입니다. 중국의 티베트 침략은 중국공산당이 중국 본토를 완전히 장악한 직후인 1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PLA)의 군대가 수도 라싸를 침략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티베트 정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무력에서 월등한 중국에 티베트 정부는 이듬 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국내적인 권력을 보장하는 조건을 전제로 중국의 압력에 굴복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점령에 대한 티베트의 저항은 1956년 동부 티베트의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포함하여 이후 몇 년 동안 꾸준히 지속되었습니다. 중국의 봉기에 대한 탄압과 위협은 거셌습니다. 1958년 12월, 라사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중국인민해방군(PLA) 사령부는 질서가 유지되지 않으면 도시를 폭격하겠다고 까지 위협했습니다.
1959년 3월 라싸에서 일어난 티베트인들의 봉기는 중국이 달라이 라마를 납치해 베이징으로 압송하려는 음모에서 촉발되었습니다. 상황은 이랬습니다. 라싸 주둔 중국군 고위층이 경극 공연과 중국차 대접을 명분으로 달라이 라마를 초청했습니다. 하지만 단서를 붙입니다. 달라이 라마 혼자 와야 하며, 티베트 군 경호원이나 수행원은 함께 오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북경으로 압송하기 위한 음모로 봤던 것이지요.
3월 10일, 30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달라이 라마로 하여금 PLA의 초대에 응하지 못하도록 노르불린카 궁전을 포위해 시위를 벌입니다. 3월 17일, 중국군 포병의 대포가 궁전을 겨냥했고, 달라이 라마는 인근 인도로 대피합니다. 이틀 후 라싸에서 중국군과 티베트인들과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티베트 반군은 무력적인 측면에서 열세였고 절망적이었습니다. 3월 21일 아침, 중국군은 노르불린카를 포격하기 시작함으로써 궁전 곁에서 야영 중이든 비무장의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학살당합니다. 티베트인들의 봉기가 진압당한 것입니다.
이후 PLA는 티베트의 저항을 진압해 달라이 라마의 측근들과 주민 수천 명을 처형하고 라싸의 주요 수도원을 파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티베트인들의 인명피해는 9만 명에 달합니다.
티베트인들의 독립을 바라는 이 봉기가 실패로 끝난 이후 중국의 티베트인들에 대한 ‘교살(stranglehold)' 정책과 티베트 독립 활동에 대한 잔혹한 탄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따라 인도로 갔고, 달라이 라마는 오랫동안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망명정부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티베트는 3월 10일 이날을 '티베트 국가봉기의 날(The Tibetan National Uprising Day)'로 기려오고 있습니다.
(1959년 3월 10일 중국군의 강압적인 통치에 항의해 라싸의 노르불린카 궁전 인근에 결집한 티베트인들)
관련기사: www.history.com/this-day-in-history/rebellion-in-ti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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