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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자 손'
    村 學 究 2011. 4. 5. 11:19

     

    근자에 신변에 이상이라고 할까,

    좀 신경 쓰일 일이 생겼다.

     

    등더리가 근지러운 것이다.

    그냥 근지러운 게 아니고,

    반드시 긁어줘야할 정도로 못 참을 지경이다.

    그리고 긁어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이 탓인 줄 안다.

    나이를 먹으면 피부가 건조해진다는 것,

    해서 모공도 넓어지고 느슨해지면서 그렇다는 것 쯤은 상식아닌가.

    그런데도 이렇게 호들값(?)을 떠는 것도 다 나이 탓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근지러운 부분이 다른 데 다 놔두고 등더리라는 게 참 신기하다.

    그 쪽으로 손을 넣어 긁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혼자서 양 손으로 긁어보려는 모습,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무슨 원숭이도 아니고.

     

    '효자 손'이라는 게 그래서 필요했던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집 탁자에 꽂혀있는 '효자 손'이 있었다.

    등이 근지러워지면서 그 게 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당연히 그 것으로 긁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등더리 긁는 강도가 세지면서 그만 부러지고 만 것이다.

    부러진 것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중국산이다.

    '효자 손'을 대체할 만한 게 없다.

    마누라더러 그 것 하나 사오라고 했는데도 들은둥 만둥이다.

     

    집에 있는 막대기 비슷한 것은 다 사용해 보았다.

    구두신는 막대기도 해보고 30센티미터 짜리 뿔자로도 해보고.

    구두신는 막대기는 너무 두터워 좀 그렇고해서

    뿔자를 많이 이용했는데, 아뿔사,

    그 것도 부러져 반토막 두 동강이가 됐다.

    급할 땐 부러진 그 뿔자 중 좀 긴 것으로 등을 긁기는 하는데,

    누가 보면 참 웃을 일이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 퇴근하셔서 저녁 드시면 안 방에 일찍 누우신다.

    텔레비전을 보시든지 하다가 주무실 것이다.

    그러다 막내 여동생을 "경아야 -" 하고 부른다.

    일찍 누운 날이면 반드시 부른다.

    막내 여동생 경아는 그 부름이 무엇인지 잘 안다.

    아버지는 등이 근지러울 때마다 경아를 불러 긁게했다.

    그 때도 '효자손'이 있었을 터인데,

    아버지 생전에 그 걸 사용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얼마나 시원했겠는가.

    아버지는 그 시원한 기분으로 막내 딸에게 이것 저것 묻기도 하고

    각별한 정을 나타내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그 때 연세를 훨씬 넘긴 나이에 나의 등이 근지러운 걸 보니

    아버지에게는 그 증세가 일찍 왔던 모양이다.

    나는 등 긁어 줄 막내 딸도 없다.

    바쁜 아들들, 나의 등 긁어 줄 시간이 있을리 없다.

    그래도 좋다.

    등이 근지러룰 때마다 한번 씩 생각해보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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