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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 아버님의 카메라
    컬 렉 션 2011. 5. 4. 18:34

    삼성동 점심약속 시간에 좀 늦었다.

    선배 두 분과 친구 한명.

    모종의 일을 도모키 위한 약속이다.

    내가 도착하기 전 친구가 운을 뗀 모양이다.

    선배 표정이 재미있다. 생각이 왔다갔다하는 표정이랄까.

     

    물었다.

    형, 어쩌시겠습니까.

    선배는 그냥 쳐다만 본다.

    그러더니 불쑥 쇼핑백 하나를 건네준다.

    야, 이거 지난번 얘기하던 아버지 카메라다. 니 가져라.

    아버지 카메라?

    아, 그렇다. 선배가 공기업사장이었을 무렵 사무실에서 들은 얘기다.

    그 게 벌써 몇 년전 얘기다. 선배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케이스를 보니 무슨 카메라인지 알겠다.

    짜이스 이콘(Zeiss Ikon)의 수퍼 이콘타(Super Ikonta) 아닌가.

    렌즈는 테사(Tessar) 80mm f.2.8의 중형 카메라.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완전 '장롱표 카메라' 아닌가.

    언뜻 보기에 외관은 깨끗하다. 블랙 에나멜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나 장롱 속에 들어있은지가 수십년이 지났다고 하니 작동은 뻑뻑할 것이다.

     

    아버지 쓰시던 것인데, 아버지도 늙으셨으니

    이제 이 카메라도 다른 주인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선배 아버님은 올해 85세이시다. 내 고등학교 25년 대선배시다.

    아직도 건강하시다. 예전 그 좋던 풍채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주간 일정을 정해놓고 생활하시는 건강한 분이시다.

     

    형, 이 카메라 비싼 것인줄 알고 있습니까.

    참 희한한 질문이다.

    고마움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해야 하는 게 그런 식의 질문으로 나온 것이다.

    얼만데?

    예전엔 거짓말 좀 보태서 인사동 기와집 한 채 값이었지요.

    지금은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컬렉터들이 좋아하는 카메라지요.

    선배는 그런 나의 말에도 덤덤한 표정이다.

     

    아무리 비싸도 뭐 하냐. 나에겐 필요가 없는 물건인데.

    이사갈 때마다 걸리적거리기도 하고...

     

    IMG_20110504_152439.jpg

     

    카메라가 나오면서 자리가 좀 이상해졌다.

    주객이 전도됐다고나 할까.

    막걸리가 몇 병 비워지면서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기는 갔지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가슴이 둥둥거린다.

    몇 번을 만지작거린다.

    어서 빨리 집에 가서 닦고 조이고 기름쳐야지.

     

    IMG_20110504_15581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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