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세상사는 이야기 2019. 3. 14. 07:36

    후배랑 북한산, 그러니까 송추로 가는 솔머리 고개 쪽에 섰다. 후배는 뭔가를 들고 있다. 형, 이거를 거기다 갖다 놓아야 합니다. 어디? 따라 와보면 압니다. 후배를 따라 붙었다. 숨은 벽 쪽으로 오르는 길이다. 오르막은 자신이 있다 싶었다. 몸도 잘 따라준다. 후배는 보따리에 싼 그 무엇인가를 들고 날래게 올라간다. 중턱의 어느 바위에 섰다. 바로 위로 숨은 벽의 위용이 우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오르는 바위 길이어야 하는데, 내려가는 릿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보기에도 좀 아찔한 바위 능선 길이었다. 후배가 걱정이 됐다. 손에 뭘 들고있는 상태라 균형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원해야, 단디해라. 후배는 얼굴을 돌려 나를 한번 힐끗 보고는 씩 웃는다. 아이고 행님 걱정마이소. 그리고는 내려간다. 릿지 초입이 보기에 좀 아슬아슬한 곳인데 물 찬 재비처럼 잘 내려간다. 나도 발걸음을 뗐다. 후배 뒤를 어떻게든 따라 붙어야 한다. 그러나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멈칫한 느낌이 머리로부터 발 아래로까지 쏵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도무지 발이 떼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내려 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한 걸음을 겨우 떼 릿지에 붙었지만, 찍 미끌어져 내린다. 도저히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는 벌써 저만치 내려가 계속 아래로 치닫고 있었다. 후배를 불렀다. 원해야, 원해야. 저 아래서 후배가 나를 치어다 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후배는 손을 흔들었다. 나를 두고 혼자 가겠다는 듯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는 후배에게 손을 흔들어 소리쳤다. 못 가겠다. 못 내려가겠다. 후배는 나를 보고 다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냥 또 아래로 치닫고 있었다. 그 때 숨은 벽이 그 큰 자태로 내 눈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꼼짝하지도 못한 채 숨은 벽에 압도되고 있었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근자에 산을 좀 멀리하고 있다. 아니 오를 수가 없다. 물론 몸 때문이다. 넉달 째 앓고있는 허리가 아직 시원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릎도 좋지 않다. 3주 전에 산성 쪽에서 대남문으로 오르다가 죽을 고생을 했다. 일산에 혼자 사는 후배 원해는 일년 중 3분 2 이상을 산에 산다. 매일 산을 오르고 거진 매일 산에서 사는 후배다. 덩치도 좋고 먹성도 좋고 술도 잘 마신다. 어제 어느 밴드에 후배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월요일은 마산서 올라 온 친구와 관악산, 화요일은 북한산, 목요일은 친구와 설악산, 일요일은 노고산... 산 잘 타는 그 후배에게 어떤 시기심이 발동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그런 시기심이 하릴없이 꿈으로 나타난 것일까. 그건 그렇고 후배가 숨은 벽에 갖다 놓아야 한다던, 신주처럼 손에 들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 난 노트북  (0) 2019.03.23
    살다 보면  (0) 2019.03.17
    어느 봄날의 '낮 술'  (0) 2019.03.08
    春三月 '미세먼지 대란'과 斷想  (0) 2019.03.06
    虛 笑  (0) 2011.02.19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