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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Shindler's List)'컬 렉 션 2019. 4. 5. 09:08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아무 영화를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가려보는 편이다. 일종의 편식인 셈이다. 가려보는 기준은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알란 파큘라, 로만 폴란스키, 마틴 스콜세지 등을 좋아한다. 이들 감독이 만든 작품 중 특히 홀로코스트와 마피아 영화를 즐겨본다.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로, 스필버거는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었고 ,알란 파큘라는 ’소피의 선택,’ 그리고 로만스키는 ’피아니스트’를 만들었다. 갱스터 영화의 거장 격인 스콜세지는 ’좋은 친구들(good fellas)을 제작했다. 홀로코스트나 마피아를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딱히 설명하기가 나로서는 좀 어렵다.
이들 감독의 홀로코스트 영화는 거의 10년을 주기로 나왔다. ‘소피의 선택’이 1982년, ’쉰들러 리스트’가 1993년, 그리고 ’피아니스트’가 2002년에 만들어 졌다. 그 주기를 감안하면 다음 영화는 2010년대에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일년을 남겨놓은 이 시점에 아직은 기척이 없다. 하지만 아직 기대는 접지않고 있다.
이들 세 영화, 모두 재미있고 좋다. 그러나 이들 영화 가운데 메시지가 가장 강한 영화로 나는 ’쉰들러 리스트’를 꼽는다. 스필버그는 달리 설명 할 필요가 없는 영화계의 거장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영화엔 항상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클로우즈 인카운터’나 ’ET’ 등 외계인을 다룬 일련의 영화는 외계인이 지구인에 보내는 우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쉰들러 리스트’도 그렇다. 적어도 인종적인 차별로 인한 살육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호소가 그 영화의 메시지인데, 보편적인 메시지로 보이지만, 그 결론에 이르는 스토리와 영상의 과정(sequence)에 담겨진 호소력이 강하다.
"누구도 과거에 일어난 일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깊게 깨닫게 해준다는 점 입니다."
‘쉰들러 리스트’를 끝내고 스필버그가 한 말이다. 후일담에서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이 영화의 원작은 ’쉰들러의 방주(Shindler’s Ark)’이다. 호주 출신의 토마스 케넬리(Thomas Keneally)가 쓴 다큐멘터리로 1982년 출간됐다. 스필버그는 그 책을 읽고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의 말을 빌자면 그 책을 영화로 꼭 만들어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가1993년에 만들어 졌으니 거의 10년 간 준비를 한 셈이다.
1993년 영화 프로덕션이 폴란드에 세워졌고, 그 해 3월 1일, 원작의 소재인 크라코프(Krakow)에서 기초 촬영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72일 후 영화가 마무리된다. 이 영화를 위해 크라코프에 거대한 촬영세트를 짓는 한편, 도시의 실제거리들과 건물등을 영화의 많은 소재로 사용했다. 말하자면 오리지널 로케이션인 셈이다.
영화의 내용은 잘 알려진 것처럼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얘기다. 1939년 폴란드 크라코프로 이주한 체코 출신의 독일인인 쉰들러가 나치와 결탁, 무임금의 유태인을 공장 인력으로 이용해 떼돈을 번다. 그러나 유태인의 나치 독일군에 의한 살육의 참상 등을 보고 마음 속의 양심이 발동, 수용소 유태인들을 자신의 공장에 취직시키는 방법 등으로 유대인들을 구출해 낸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어찌 보면 단순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나치독일의 만행과 유대인들의 공포는 끔찍하고 전율적이다. 인간의 본성적인 선과 악, 그리고 그 속에 도사린 위선과 위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내용을 담고있다.
쉰들러는 이 일로 유태인들에겐 잊힐 수 없는 은인이 된다. 영화 속 유태인들의 지도자 격인아이작 스턴으로부터 받는 헌사의 한 대목이 이를 대변해 준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
쉬들러의 출생 등 경력과 관련해 탐욕과 이기에 물든 그가 어떻게 이런 일을 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사실 없잖아 있었다. 특히 그의 부인인 에밀리 쉰들러가 그 논란의 한 가운데 있는 게 좀 아이러니컬하다. 에밀리는 유태인들이 구출된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남편은 결코 그런 일을 할 ‘영웅’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말로 남편 오스카 쉰들러를 공박하고 있는 게 그렇다.
어떻든 쉰들러가 유태인을 구하기로 마음을 잡아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쉰들러 공장의 회계 책임자인 아이작 스턴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면서 느낌을 주긴 하지만, 그닥 설득력이 크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에밀리는 아이작 스턴이 ’쉰들러 리스트’를 추진하고 실행한 장본인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쉰들러와 스턴과의 관계는 영화에서 보듯 아주 가까운 사이다. 따라서 둘 간에 ’쉰들러 리스트’를 누가 작성하고 실행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에밀리의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자뭇 감정적인 요소가 있다. 영화에서도 나오듯, 그녀가 남편의 폴란드 공장을 방문하던 날, 오스카 쉰들러는 공장 여직공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데서 보듯, 둘 간의 관계는 그리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
스필버그는 영화 속 이런 내용에 사실감을 더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유대인 수용소가 있던 플라초우(Plaszow)에 34개의 병영과 7개의 감시탑, 그리고 유대인 무덤으로 가는 도로를 포장하고 캠프로 가는 길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다. 어느 곳, 어떤 각도에서 카메라 앵글을 잡아서 찍어도 모든 게 가능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스필버그는 이에 더해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영화를 흑백 필름으로 촬영한다. 그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경험한 홀로코스트에 관한 것은 모두가 우중충한 흑백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확고하게 굳어진 거대하고 잔인한 흑백의 이미지들을 홀로코스트로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자 했던 게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가 100% 흑백으로만 촬영된 것은 아니다. 영화 속,어린 소녀가 독일군에 이끌려 죽음의 길로 가는 장면. 이 장면에 어린 소녀가 입고 있는 옷은 빨간 색이다. 유일한 컬러 장면이다. 왜 소녀가 입고 있는 옷만 빨갛게 했을까. 스필버그는 그에 대한 답이 없다. 그러나 그 빨간 색의 의미가 무엇인지 보는 사람들은 다 안다. 나치독일군의 묵직한 걸음, 그 칙칙한 흑백의 흐름 속에 나풀대는 순진한 빨강의 움직임, 그것은 어떤 장면으로도 표출 못할 처절한 공포의 아이콘이라는 것을. 유태인 시체 소각 장면. 너절하게들 실려 소각장으로 옮겨지는 구루마에 빨강 옷의 이 어린 소녀도 보인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 사이에 한 숨이 흘러나온다.
비애감이나 긴박감을 극도로 높이기 위해 스필버그는 영화감독으로서가 아니라 당시의 현장을 재창조하고 기록하는 저널리스트적인 시각으로 접근키 위해 그런 색감 대조의 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시네마베리떼’ 기법이라는 것인데, 흑백의 필름에 영화의 진실을 담아내는 ‘시네마베리떼’의 촬영 장비로는 핸드-헬드카메라가 적합했다는 게 스필버그의회고담이다.
스필버그는 캐스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스필버그는 쉰들러이자, 아이작 스턴이었고, 아몬고테였고, 모든 유태인 생존자들이기도 했습 니다." 쉰들러로 나오는 리암 니슨(LiamNeeson)의 이 말 속에 스필버그의 그런 노력이 담겨있다. 아이작 스턴(Itzhak Stern)은 쉰들러의 양심을 일 깨워준 쉰들러 공장의 회계담당자로 실제와 영화 속의 주요인물이다. 그 역을 스필버그는 벤 킹슬리(Ben Kingsley)에게 맡겨 완벽히 소화해 내게 했다. 쉰들러 역의 리암 니슨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쉰들러 역에 적격이다. 그리고 플라초우 수용소장으로 나오는 아몬 괴츠 중위는 랄프 파인즈(Ralph Fiennes)가 맡아 악의 화신 격을 전율스러울 정도로 잘 해냈다. 괴츠 중위의 하녀인 헬렌 허시 역의 엠베스 데이비티즈(Embeth Davidtz), 쉰들러 부인으로 나오는 캐롤라인 구달(Caroline Goodal)등도 스필버그가 10년의 준비 기간을 통해 준비한 배우들인 만큼 각자들의 연기가 주어진 역할에 딱 부각되는 완벽한 캐스팅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리암 니슨, 킹 벤슬리, 왼쪽부터)
‘쉰들러 리스트’를 처음 본 게 한국에 개봉된 1994년이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본 기억이 있다. 2004년 어느 날인가, 교보문고엘 갔더니 장정이 잘된 ‘쉰들러 리스트’ DVD가 나와 있었다. 그 걸 사서 한번 보고 그냥 놔뒀다. 그저께 정리를 하는데 그 게 나왔다. 마침 큰 아이가 거실에 갖다 놓은 대형 텔레비전이 있어 다시 한번 봤다. 전율과 감동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이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DVD 표지를 자세히 보니 꽤 의미있는 DVD이다. 영화 나온지 10년을 기려 만든, 말하자면 ’10주년 기념판(Special Edition)’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왜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집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막연한 변명 같은 게 떠올랐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나는 善한가, 아니면 惡한가. 그도 저도 아니면 양면성을 지닌 善惡의 복합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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