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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순천집' now and then
    컬 렉 션 2019. 4. 18. 20:15

    며칠 전 7년 전 여의도 삼중빌딩 지하에 있던 '순천집'을 추억삼아 SNS에 쓴 적 있는데, 예상 외로 '순천집'을 아는 지인들이 꽤 있었다. 그 글 속에는 내가 그 집을 그리워하는 느낌이 담겼던 모양인지 그와 관련하여 몇몇 '제보'가 있었다. 한 후배는 몇년 전 빌딩 지하를 갔는데, 구조가 많이 변경돼 있었다면서 '순천집'이 사라지고 없는 듯이 알려왔다. 그런데, 오늘 선배 한 분이 점심을 겸한 낮술을 그 집에서 먹었다고 알려왔다. '순천집'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선배는 사진도 한 장 보내왔다. 7년 전 내가 찍었던 그 위치에서 찍은 것이다. 내 사진에는 아주머니 얼굴이 나왔는데, 선배 사진에는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아주머니도 많이 변했겠습디다고 했더니, 선배는 그에 대한 대답보다는 아주머니가 사근사근 친절했다면서 그 집 자랑을 늘어 놓는다. 언제 한번 같이 가자고 했더니, 선배는 다음 달 모임을 그곳에서 갖자고 했다. 모임은 모임이고 그 전에 여의도 나가는 길에 한번 가볼까 한다.







    '순천집'

    여의도 국회의사당 옆, 남중빌딩 지하에 있는 오래 된 밥집이다. 그저께 그 빌딩에 있는 국민일보 사우회에 들렀다가 소주 한잔 한 집이다. 좀 허름해도 맛은 있다. 선배님은 그런 말로 앞장을 섰고, 나는 따랐다. 메뉴고 뭐고 볼 필요도 없단다. '시골돼지 김치찌게' 하나면 족하단다. 같이 간 이 국장이 하나를 더 추가한다. 생두부 김치.

    왜 시골돼지인가. 돼지가 도시 것도 있는가. 주인 아주머니 왈, 시골돼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여튼 있다는데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다. 맛이 말해 줄 것이다. 구수하다. 찌게가 구수한 데서 촌 냄새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인가. 돼지고기도 두툼하다. 시골돼지라서 그런지 육질감도 좀 부드럽다. 아무튼 구수하고 고기가 두툼하고 부드러우니 소주 안주로서는 안성맞춤이다.

    밥집 풍경도 눈에 익은 분위기다. 아무렇게나 써붙여 놓은 메뉴를 보니 웃음이 난다. 그 보다 더 시골적인 것은 주인 아주머니다. 아무렇게나 말을 받아주곤 또 아무렇게나 대꾸를 한다. 별 생각없이 말을 듣고 한다. 표정도 무표정이다. 대신 일을 멈추지는 않는다. 일을 하면서 말을 받고 하니 그럴 것이다.

    좀 유심히 보다 한마디 했다. 아주머니는 하루 종일 일만 하요? 그 일 좀 멈추고 말 좀 하소.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대꾸. 뭐 할일이 따로 있는 감. 그저 묵고 사려면 하는 짓이나 해야지. 다른 짓 하면 씰데없는 잡생각만 생기고. 언뜻보니 무우를 썰고 있다. 아줌마, 그 무우 밑둥 좀 썰어주소. 안주로 하게. 그 말에 언뜻 눈길을 준다. 왠일인가. 무우를 안주로요? 속 쓰릴 것인데..괜찮다고 했더니, 먹기 좋게 썰어다 내놓는다. 무우를 안주삼아 소주 한병을 마셨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한장을 찍었다. 아줌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일만 한다. 아줌마, 사진 한장 찍었소. 허락도 안 받았는데, 괜찮지요. 아줌마가 웃었다. 두어시간 앉아있으면서 처음 보는 웃음이다. 괜찮소. 내가 뭐 대단한 것이라도 돼요? 찍어주니 고맙지. (2012년 2월 27일)

    (7년 전 이 집이 아직도 있는 줄 모르겠다. 여의도 가는 길에 한번 가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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