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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으로만 남은 인사동 '시인과 화가'
    추억 속으로 2019. 4. 17. 08:34

    이 사진들이 어디에 꽁꽁 숨어있다가 나왔다. 기이한 일이다. 몇년 전 꼭 찾아볼 일이 있어 무진 애를 써가며 찾아도 나오질 않았던 사진들이다. 결국 상상으로만 이 사진들에 담긴 형상을 그려볼 수밖에 없었다. 사진 속의 인물은 변 영아라는 분이다. 수필과 시를 쓰던 문인으로, 고인이 된지 꽤 된다. 몇년 전 이 사진을 찾아보려 했던 것은, 우연히 누군가로부터 이 분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인사동 학고재 골목의 중간 지점에 주점이 하나 있었다. 옥호가 '시인과 화가'다. 변 여사가 이 주점의 주인이었다. 내가 이 집을 포함해 인사동을 들락거린 건,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문사 퇴사를 전후한 시기였는데, '시인과 화가'는 신문사를 나온 1990년대 말에 거의 살다시피하며 다녔다. 아래 사진의 주점 간판 글씨를 내가 쓸 정도였으니 짐작이 될 것이다.

    이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주로 나이 지긋한 문화예술 부분에 종사하는 분들이 단골들이었다. 문인과 화가들, 그리고 언론계. 연예계 분들이 많았다. 반야월 선생과 영화배우 이 민 씨 등이 계셨고, 중광 스님과 이만익 선생 등 화가분들의 발길도 잦았다. 장관을 역임한 이 모 씨와 미국에 거주하는 장 면 박사의 아드님도 한국에 올 때면 이 집에 들러가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고등학교 선배로 당시 국제신문 서울지사에 계셨던 심상곤 형님과 많이 들렀다. 언급한 이들 중 대부분은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다.

    이 집의 특색은 항상 음악이 흐른다는 것이다. 어느 좌석이건 술이 거나해지면 상을 두들기며 노래를 한다. 그래도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가끔은 어우러져서 함께 부르기도 한다. 흥을 타면 주인장 변 여사가 풍금 앞에 앉는다. 동요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밤이 이슥해지면 학고재 골목 안의 풍금 소리는 더욱 명료했다. 골목 입구에까지도 울려 퍼졌다. 그 시절이 아마도 인사동의 낭만이 그나마 살아있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시인과 화가'는 기억하기로 2000년 대 중반까지는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때 좀 뜸해 한 적이 있었기에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다. 그 무렵 한번 발걸음을 했더니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변 여사의 개인적인 사정이 작용한 탓이다. 가게를 내 놓는다고 했고, 누구 누구가 그 가게에 들어올 것이라고도 했다. 자신의 거취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려니 하고 또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가보았더니 '시인과 화가'는 없었고, 대신 그 자리에 찻집에 들어서 있었다.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 여사의 '귀천'이다. 소위 '술꾼'으로서 좀 아쉽기는 해도 '귀천'이 자리잡았기에 가끔씩 차 마시러 들리곤 했다.

    변 여사를 우연히 청진동 '유정낙지'에서 만난 건 그 얼마 후다. 이상한 모습이었다. 머리칼이 좀 자라고 있었지만 분명 삭발한 머리였다. 그기다 옷을 장삼이다. 웬일인가고 물었다. 천하를 주유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들이 금호그룹 계열회사에 다니며, 아들 내외와 함께 산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좀 의아스러웠지만, 더 묻지 말라는 표정이었기에 막걸리 몇 잔 씩을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 얼마 후 변 여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점을 다시 학고재 골목에 열었다는 것이다. 간판은 예전 '시인과 화가'였지만, 자리는 골목 깊숙한 곳에 있었다. 안 가 볼 수가 없다. 여늬 주점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주점이었다. 분위기도 예전같지 않았다. 물론 풍금도 없었고. 그런 분위기를 내가 따질 게재는 아니다. 헌데 술이 좀 올랐을 때 그여코 그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옛 분위기를 찾는 건 그야말로 내 사정이다. 그걸 속사정이 있을 변 여사에게 따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따져드는 내가 머쓱해졌다. 그리고 발길이 줄었다. 예전처럼 혼자 가서 마실 수도 없었다. 내 응석을 곧잘 받아주던 예전의 변 여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얼마 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시인과 화가'는 잊고 살았다. 인사동도 잘 나가지 않았다. 만나 볼 사람들도 없고, 딱히 나갈 일도 없고, 또 가서 앉을 만한 곳도 없었다. 인사동 거리는 어쩌다 종로통을 나가면 그저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었다. 그러다 언젠가 학고재 골목 앞을 지나는데, '시인과 화가'가 문득 생각났다. 아직 그 집이 있을까. 있을리가 없다면서도 발길은 그 골목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없었다. 흔적조차도 없었다. 평범한 가정집이 들어서 있었다. 그 무렵 그 소식을 어디서 접했다. 변 여사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황망한 생각에 좀 더 파고들어 알아 보았더니 그 시점에서 이미 이태 전 지병으로 별세했다는 것이다. 무덤에 술이라도 한 잔 부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변 여사에 대한 것은 딱 그것 뿐이었다. 그 외 그녀와 관련되는 얘기나 소식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쉬웠고 슬펐다. 생전에 왜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던가 하는 후회이고 자책이다. 어쩌다 정성스럽게 쓴 시를 보여주곤 했다. 내 반응은 냉소적이었고, 그저 타박만 일삼았다. 그 일 하나 만으로도 가슴을 친다.

    변 여사 생전에 낸 시집이 있었다. 잘 포장해 수줍게 내 밀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받아서 펴서 몇 자 잃어보지도 않고 대충 아무렇게나 팽개쳤던 기억이 있다. 변 여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그 시집이 떠 올라 찾아 볼 생각을 했다.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서재를 뒤졌으나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변 여사의 그 시집은 술에 취해 들고오다 어디서 잃어버렸을 것이다. 사진도 시집과 함께 떠 올려본 것이다. 그러다 이 사진 두 장이 나온 것이다. 2000년 초, 니콘 F 필름카메라로 내가 찍어준 것이다. 이제는 '시인과 화가'도 없고 변 여사도 없고 이 사진 두 장만 오롯이 남았다. 사람과 세월은 가고 추억으로만 남은 것이다. 변 여사, 나의 무심함과 이런 저런 불찰을 부디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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