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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노아의 방주'를 타고 떠났다사람 2019. 5. 28. 06:50
사람은 가도 이름은 남는다. 그 이름에 따라가는 글도 남는다. 친구 떠난지 어언 3개월 째로 접어들고 있다. 임종 소식과 부음을 접하고는 도시 믿어지질 않고 그저 얼떨떨했던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지금은 가끔씩 현실로 느껴지지만 대저 골똘하지 않은 생각에서는 여전히 그러하다. 가까이서 지내던 친구가 불현듯 세상을 떠났는데, 그게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로인한 것일까, 나의 언행 등이 이런 저런 분위기에 견주어 평소의 나 답지 않다고들 한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와 시선이 그렇다. 나는 그렇게 움직이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런 말이 들리는 것은 부지불식 간에 주변에 반사된 나의 그런 심경 탓일 것이다. 어떻든 정신 가다듬고 생각하니 고인이 된 친구와 그 가족들에게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나의 책상 한 켠에는 A4 용지 네장 분량의 워드로 된 원고가 놓여져 있다. 그게 언제부터 놓여져 있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도 꽤 되지 않았나 싶다. 친구가 남긴 글인데, 제목이 '노아의 방주'다. 친구 떠나고 무심결에 그 원고가 어떤 것인지 집어들어 보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친구의 글이었다. 그리고 그 글 때문에 친구를 나무랐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친구는 투병을 시작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글들을 나더러 좀 봐 달라고 했다. 친구는 그간 써 두었던 칼럼 등의 글에 새로 쓰게 될 글을 보태 출판을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적극 찬동했고 지지와 격려를 보냈다.
친구가 아픈 와중에 글을 쓴다는 것을 나는 희망의 메시지로 보았다. 병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일어 나기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 친구는 글을 쓰면서 아마도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 때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친구가 써서 보낸 '노아의 방주'라는 글을 보고 내가 화를 낸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때문이다.
친구가 보내 온 여러 편의 글들에 비해 '노아의 방주'는 내용이 좀 이상했다. 그 글을 읽어가면서 어, 이게 아닌데 하는 뭔가 이상하고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 글은 말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노아가 방주를 타고 피안의 신천지로 떠나면서 방주에 싣고 갈 여러 대상을 친구의 입장에서 고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음에 담아가고자 하는 것을 고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친구는 그 글에서 노아가 그랬듯 마음에 담아 갈 사람과 동. 식물 등을 그 이유를 들어가면서 고르고 있었다.
친구의 그 글을 보고 내가 발끈했다. 현실이 어떻고 무슨 짓을 하든 나는 친구가 병마를 털어내고 다시 거뜬히 일어설 것을 움직일 수 없는 당위로 여겼다. 그런데 친구는 세상을 하직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니 화가 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차마 대놓고 친구에게 그런 이유로 화를 낼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한 며칠 연락을 하질 않았다. 어쩌면 좋을까로 몇 날을 좀 앓다시피 했다. 나는 결국 술의 힘을 빌었다. 그리고는 친구에 전화로 퍼부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에 구체적으로 없다. 하나 생각나는 것은 나는 일방적으로 친구에게 험한 말로 화를 퍼붓고 있었고, 친구는 그냥 묵묵부답으로 듣고만 있었다는 것. 이런 말도 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너의 유서까지를 챙겨야 하느냐. 지금 그 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그 얼마 후 친구는 먼 여행을 가듯 이 세상을 떠났다.
오늘 친구의 '노아의 방주'를 새롭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 본다. 밑줄까지 쳐 가며 읽어본다. 글 속에서 친구가 손짓을 하고 있다. 희망과 즐거움, 그리고 그리움이 느껴지는 따스한 손길이다.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래본다. 고르느라 무진 애를 썼던, 네가 '방주'에 태워 데려가고자 했던 그 사람들, 그리고 동물, 식물들과 그곳 '신천지'에서 영원히 함께 즐겁게 잘 지내고 있기를 빈다. 친구는 글에서 황송하게 나도 언급하고 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읽어보니 나 같은 존재가 언급되고 있다. 친구는 나도 데려가고 싶었구나. 친구여, 기다리거라. 나도 곧 가마. 우리 그곳에서 다시 만나 영원을 얘기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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