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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메라 名人 나겔 博士(Dr. August Nagel)
    사람 2019. 6. 16. 08:32

    수 없이 명멸한 옛 카메라들 중, 만든 사람의 이름 딴 카메라는 흔치 않다. 언뜻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바르낙 카메라.' 오스카 바르낙(Oskar Barnack)은 주지하다시피, 35mm 카메라를 대표하는 라이카의 창시자격인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딴 '바르낙'이 라이카 호사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바르낙 카메라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라이카 35mm 랜지파인더 중 스크류 마운트 모델을 말한다. 1913년 첫 생산된 Leica 1(A)를 시작으로 해 1960년대 초에 나온 Leica IIIG까지가 그 모델들이다. 이 모델들이 언제부터 '바르낙'이라고 불리고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이름은 공식적인 명칭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도 그런 이름이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젊은 라이카 매니아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아마도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붙인게 아닌가 한다.

     

    '바르낙'말고, 정식으로 만든 사람의 이름을 딴 카메라가 있다. 1928년에 나온 '나겔(Nagel)'이다. 콤팩트한 크기에 독특한 디자인으로, 당시 호사가들의 관심을 끈 카메라이다. 나겔을 만들어 출시한 사람은 독일광학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인 오귀스트 나겔 박사(Dr.August Nagel)(1867-1943)이다. 이 양반은 1909Drexler & Nagel이란 카메라 회사를 설립해 Contessa 등을 만들었다. 명성이 알려지면서 1926년 짜이스 이콘(Zeiss Ikon AG)에 들어가 핵심적인 위치에서 기술자 및 경영자로 참가한다. 그러나 얼마 못 가 1928년에 짜이스 이콘을 나온다. 짜이스 이콘을 그만 둔 계기는 여러 얘기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학력과 관련된 얘기다. 학력이 문제되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괴팍스런 성격의 나겔 박사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박사학위는 명예학위다. 1918년 프라이부르크에서 받은 것으로 돼있다. 짜이스 이콘에 들어가면서 아마도 학력을 속인 게 들통이 나고, 이 것이 그의 괴팍스런 성미, 이를테면 자기 기술에 대한 극도의 자부심과 고집 등이 경영진과 마찰을 빚어 결국 짜이스 이콘을 그만 두었다는 얘기다.



                                                                                                          (만년의 나겔 박사)

     

    짜이스 이콘을 나온 후 나겔 박사는 독자적인 카메라회사를 설립한다. 바로 Nagel-Werke, 1928년부터 1931년 사이에 여러 개의 혁신적인 카메라를 개발한다. 이 가운데는 Recomar Plate, Vollenda Folder 등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카메라가 바로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나겔 쀼삘레(Nagel-Pupille)'이다. Pupille'눈동자'라는 뜻이니 '나겔의 눈동자'라는 뜻의 카메라라 해야 할까.

    '나겔 쀼삘레'는 나겔 박사의 회심의 역량과 미니어쳐형의 크기, 그리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이 카메라의 메카니즘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우선 렌즈와 셔터 어셈블리가 카메라의 상판과는 아무런 기구적인 연결이 없다. 대신 특이하게도 렌즈셔터 본체와 분리되는 필름 캐리어에 상판과 뷰파인더가 포함된 형태의 랜지파인더 카메라이다.



                                                                             (Nagel Pupille w/Elmar 5cm/f. 3.5)



                                                                                                      (리플렉스 장치를 추가한 Nagel Pupille)


    컴팩트한 크기에, 또 두개로 앙증맞게 분리되는 장난감 같은 메카니즘이 재미있다. 렌즈는 처음에는 슈나이더의 제나(Xenar) 5cm/f.2, f.2.9, f.3.5가 부착돼 있는 모델로 나오다가, 좀 고급화되면서 라이카의 Elmar 5cm/f.3.5가 달린 모델이 후에 생산됐다. T, B, 1 - 1/300 스피드의 콤퍼 셔터(Compur Shutter) 시스템이다. 3cmx4cm 사이즈에 16장이 촬영되는 127 필름을 사용했다. 목측이기 때문에 별도의 거리계를 사용한다. 라이카 거리계인 FOFRE와 아웃핏을 이뤘다. 전용케이스를 포함해 상태좋은 나겔 쀼삘레를 아웃핏으로 구하기는 쉽지 않다. 1999년인가, 프랑스 사람으로 부터 아웃핏을 구했는데, 당시 가격이 800 달러 정도였다. 나겔 박사는 이후 1931년까지 여러 종의 나겔카메라를 생산한다. Vollenda, Rocomar, Librette, Fornida 등의 모델들이 이 시기에 나왔다.



                                                                                                     (Nagel Pupille outfit)



                                                                                                         (Nagel Pupille 출시 당시의 광고)

     

    카메라 기술자로서의 나겔 박사의 인생이 그리 안정적이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나겔박사는 나겔카메라 개발로 다시 명성을 얻지만, 아무래도 개인회사로써 거대한 자본을 가진 카메라회사들과 겨루기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1931년 코닥(Eastman Kodak)에 합류하게된 것도 아마 그와 무관하지 않나싶다. 코닥에 합류하는 과정도 독일에서가 아니라 미국에서 하게 된다. 로체스터에 있는 독일 코닥의 미국 뉴욕법인(Eastman Kodak-New York AG)으로 들어간 것이다.

     

    코닥에서 나겔 박사는 그의 카메라 기술인생의 마지막을 불태운다. 코닥이 자랑하는 35mm 랜지파인더 모델인 '레티나(Retina)'를 개발에 들어가 1934년 레티나 시리즈의 첫 모델인 '레티나 I(Retina I; Type 117)'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겔 박사인 것이다. 그 후 여러 종의 레티나 모델이 그의 기술과 자문을 거쳐 생산된다.



                                                                                              (Kodak Retina Ia w/Xenar 50mm f. 2.8)

     

    '나겔 쀼삘레'를 보고 접할때마다 나겔 박사가 생각난다. 앙증맞은 모습과 나겔 박사의 고집스런 인상과는 매치가 잘 안 된다. 뭔가 좀 역설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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