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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茶山의 詩 한 편 - '憶幼女(어린 딸이 그리워)'
    컬 렉 션 2019. 7. 29. 08:38

     

    푹푹 찌는 폭염속에 읽어보는 다산 시가 선선하고 청량하다. 이열치열이 아니다. 워낙 유명해 덧붙일 게 없는 분이지만, 그의 시 또한 세상과 인심의 흐름, 그리고 사람에 대한 수백 가지의 감정을 어쩌면 이렇게도 밝고 정감있는 묘사로 구사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생전에 2천5백 여수의 시를 지었는데, 그 중에서 골라 '창작과 비평사'에서 펴낸 책에 수록된 것만도 250편이 넘는다. 한 수 한 수 읽어가며 읽는 시에서 다산 생애의 찬란했던 시기와 고난의 시기가 겹쳐진다. 아래 시가 눈에 자꾸 밟혔다. 다산의 로맨스랄까, 그로인한 그 소산의 그림자가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몇 번을 읽었다.


    어린 딸 단옷날에(幼女端陽日)

    새 단장하고(新粧洗玉膚)

    붉은 모시 말라서 치마 해 입고((裙裁紅苧布)

    머리엔 푸른 창포 꽂고 있었지(髻揷綠菖蒲)

    절하는 법 익히며 단정함 보였고(習拜微端妙)

    술잔을 올리면서 기쁜 표정 지었는데(傳觴示悅愉)

    오늘같은 현애석엔 그 누가 있어(如今懸艾夕)

    손안의 구슬을 어루만져줄 건가(誰弄掌中珠)


    이 시의 제목은 '憶幼女'이니, 곧 '어린 딸이 그리워'이다. 이 시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다산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는 점에서다. 한 딸은 정부인인 홍혜완에게서 난 홍연이고, 또 한 딸은 다산이 강진 유배 중에 만나 맺은 진솔과의 사이에서 난 홍임이다. 다산의 강진에서의 진솔과의 사랑,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난 홍임에 관한 것은 구전에 의한 것이라 진위에 관한 논란이 있어왔다. 하지만 지난 해인가, 국문학자 임형택이 강진에서 전해지는 - 진솔이 친정인 남당에서 다산을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 한편의 연작시 '남당사(南塘詞)'를 발굴함으로써, 다산과 진솔의 사랑이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해에는 소설가 최문희가 이 연작시에 바탕한 소설 '정약용의 여인들'을 출간하기도 했다.

    진솔과 홍임은 다산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다산이 유배를 끝낸 후 사대부 집안의 법도랄까, 그에 따른 본부인 혜완의 내침 등으로 사실상의 버림을 받는다. 그로인해 진솔은 딸 홍임을 데리고 다산의 유배지인 강진에서 일생을 보낸다. 진솔과 홍임의 그런 처지에 다산의 마음이 편했을리가 없다. 이들 모녀를 그리는 다산의 심사가 담긴 시와 시화도가 전해지기도한다. 다산은 1813냔 딸 홍임을 위해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린 '매화독조도'를 남겼다. 같은 해 다산은 혼인하는 딸 홍연을 위해 만든 '매화쌍조도'를 '하피첩'에 남기기도 했다.

    위의 '억유녀'라는 시를 접하고, 나는 이 시가 진솔과의 사이에서 난 홍임이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로 알았다. 아무래도 정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홍연보다는 불우한 환경에 처한 홍임이에 대한 정이 좀 더 애틋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시는 다산이 1801년에 지은 것으로 나와있다. 1801년이면 그가 신유사옥으로 경남 장기 땅으로 첫 유배를 간 해다. 첫 유배는 몇 달만에 풀리지만, 곧이어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그 해 다시 강진 땅으로 18년 간의 유배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니 이 시는 강진 유배 전의 시라는 점에서, 홍임이 보다는 홍연이를 위해 지은 시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사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에서 홍임이가 자꾸 떠 올려진다. 어미 진솔과 함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일생을 보낸 두 모녀의 고단한 삶이 이 시와 겹쳐지기 때문이다.(사진은 1813년 다산이 딸 홍임이를 위해 만든 '매화독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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