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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엔 '통술'이 흐른다
    컬 렉 션 2019. 8. 3. 18:25

    마산은 항상 술이 흐르는 도시다. 옛날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좋은 쌀, 좋은 물, 그리고 여기에 술 빚기에 좋은 적합한 기후가 따르면 좋은 술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약삭빠른 일본인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마산에는 일본인들에 의한 유수한 술 공장들이 많았고, 개운치 않은 유산이지만 해방 후에도 이를 발판으로 마산의 주류공업은 전국에서 가장 흥했고 셌다. 1940년 마산에는 일본인들이 독점한 13개의 청주 양조장이 있었고, 해방 후에는 50여 개의 청주. 소주. 막걸리 양조장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마산사람들이 즐겨 마실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무학소주도 1929년에 세워진 일본 술 공장 '쇼와(昭和)주류공업'이 그 뿌리다.

    마산이 술의 고장, 즉 '주도(酒都)'라는 별칭도 일제 때부터 전해진 유산이다. 1920년대 마산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던 술의 맛과 향이 너무 좋아, 당시 일본 최고의 청주였던 나다자케(灘酒)에 필적되면서 '조선의 나다자케'라는 명성과 함께 마산을 '주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주도'라는 명칭은 아직도 마산을 지칭하고 있으니, 마산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항상 술이 흐른다는 게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닌 것이다.

    이런 좋은 술을 바탕으로 마산에 마산 나름의 '술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술은 사람을 부르고, 술 마시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문화가 생겨난다. 이 걸 일컬어 '술 문화'라 했을 때, 마산은 좀 독특한 그것을 지닌 도시다. 바다를 낀 탓에 사시사철 언제나 다양하고 싱싱한 해산물을 재료로 한 안주가 풍성해 그에 따라 마셔지며 흘러가는 술이 저절로 자리 잡은 문화다.

    언제부터인가 마산의 그것으로 자리 잡아 자연스럽게 불리어지고 있는 게 '통술문화'다. 바다가 유독 마산에만 있는 것은 아닌데, 그로써 '통술'이라는 명칭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게 다소 억설(臆說)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환경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마산사람들의 술에 대한 남다른 인식과 이들이 모여진 후한 인심을 여기에 보태고 싶다. 마산이 예로부터 '주도'이고 술 공장이 많은 탓에 어릴 때부터 자주 보고 접하면 뭐랄까, 술에 대한 인식이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그 인식이란 것은 말하자면 술에 대한 익숙성인데, 물론 이는 평균적인 것은 아니다. 마산에 유달리 술 좋아하고 잘 마시는 사람이 많다는 말도 그래서 한번 덧붙여 본다. 술을 즐기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술에 인색하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통술에서의 '통'이 인심을 뜻하는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말하자면 싱싱한 해산물을 푸짐하게 '통째'로 주는 후한 인심이 담긴 술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물론 통술에 관해서는 여러 풀이가 있다. 어떤 이는 '통(桶)'에다 넣어 빚은 술', 혹은 '한 통 되는 술'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설명한다. 예전에 청주를 만드는 장군동 어느 술도가가 통에 채운 술을 한 잔씩 받아마시게 했는데, 그 걸 '통술'이라고 했다는 증언을 보태 통술이 술을 채우는 통(桶)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인들끼리 부담 없이 한잔할 수 있는 경제적인 술, 우정과 화합을 함께할 수 있는 정겨운 술, 다시 한번 더 찾고 싶은 주심(酒心)을 자극하는 반가운 술을 일컬어 통술이라는 풀이도 보태진다.

    그럴듯한 설명이지만, 마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싱싱한 해산물 안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좀 아쉽다. 부담 없이 지인들끼리 한잔할 수 있는 정겨운 술, 혹은 또 다시 찾고 싶은 술집이라는 설명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마산의 통술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지금 마산의 많은 통술집이 갖가지 해산물 안주를 밑바탕으로 해 장사를 하고 있을 뿐더러 또한 그렇게들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마산의 통술문화, 혹은 통술을 파는 통술집은 마산의 해산물 안주가 들어가야 제격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통술은 그 유래가 갖가지 푸짐한 안주들로 한 상 잘 차려진 술상으로 마시는 술로, 한 자리에서 술과 식사의 모든 것이 '통째'로 해결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푸짐한 안주들이란 마산 앞바다에 잡힌 싱싱한 해산물들인데, 배를 타던 선원이나 생선을 잡던 선창가 어민들이 오동동이나 남성동의 술집에서 그런 식으로 마신 것에서 이름 붙여진 것으로 보여 진다. 더 구체적으로는 예전 오동동의 좀 고급스런 요리를 팔던 요정들이 돈이 궁해진 선원과 어민들을 대상으로 격을 낮춘 저렴한 술상으로 술을 팔았다는 것에서 유래됐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통술집이 그 뿌리를 내려간 시기는 대략 1970년 대 들어서인 것으로 꼽는 견해가 많다.

    어쨌든 술과 술집에 관한 한 마산에서 대세를 이루는 것은 통술집이고 이 집들이 마산의 술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고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마산의 통술집에 가면 우선 그 풍성하고 푸짐한 안주가 술맛을 돋우게 한다. 처음 가득 차려진 상에 입과 술맛 당기는 안주가 가득한데도 맛있는 각종 안주는 거짓말 좀 보태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끝없이 나온다. 안주는 다시 말하지만, 어시장을 지척에 둔만큼 그곳에서 아침 일찍 구해 온 싱싱한 해산물인데, 철마다 다른 제철 해물이 주종을 이룬다.

    이를테면 봄이면 쑥(갯가재), 가리비, 밀치, 꽁치, 호래기 등 좀처럼 먹기 힘든 해물까지 나온다. 여기에 미더덕, 굴, 해삼, 멍게, 낙지는 기본이고 갖은 양념으로 조리한 감성돔, 꽃돔, 갈치구이, 아귀찜 등 20여 가지가 안주로 나온다. 여름이면 볼락, 가을이면 전어, 주꾸미 등이 당연히 술상에 차려진다. 대구 아가미로 담근 장자 젓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푸짐한 안주로 차려진 술상을 대하면 자연 술값에 민감해진다. 하지만 그럴 염려는 안 해도 된다. 술값계산과 관련한 셈법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안주요리별로 값을 받는 게 아니라, 한상 값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통술집에서는 안주 값을 따로 받지 않는다. 한상 값은 집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기본으로 나오는 술 몇 병을 합쳐 대략적으로 4-5만 원선이다. 그 다음부터는 마시는 술값만 내면 된다.

    아무리 계산법이 이렇다지만, 마시는 입장에선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그래서 몇 번씩 주인 아주머니에게 이를 확인한다. 안주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곧잘 나온다. 그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다. "고마, 주는대로 무이소, 마." 어느 해 봄인가, 마산을 찾았던 중앙일간지의 어느 기자는 이런 마산의 술값계산법과 관련한 통술문화를 '주인과 손님 간의 암묵의 범절'이라는 약간은 난해한 말로 요약한다. "안주가 뭐 나올지도 물어보면 안 되고, 가격도 물어보면 안 되는 이 독특한 문화는 한마디로 주인과 손님간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런 술값의 셈법이니 주머니가 가벼운 술꾼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마산의 술에 대한 인심이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방에 '통째'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마산 통술집의 가장 큰 경쟁력이기도 하고 그로서 엮어지는 통술문화의 원천이기도 하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는 술집들이 경남지역에 제각각의 지역적인 특색과 함께 술 문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테면 통영의 '다찌'와 진주. 사천지역의 '실비 집'이 그 것들이다. 전라도 전주에서도 막걸리 한 주전자에 한 상 넉넉히 내놓는 술집이 그곳의 술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마산을 떠나 타지에 살고 있는 출향사람들은 마산엘 가면 반드시 찾게 되는 곳이 통술집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통술집들 중에서도 잘 골라가야 한다. 친구나 지인들이 함께 한다면 그들이 끄는 곳으로 가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대개는 이들 집들의 거리가 있는 오동동이나 옛 마산극장 부근의 중앙동으로 가게 마련인데, 그 집들마다 나름대로 특색을 갖추고 있다. 어떤 집은 생선회가 좋고, 어떤 집은 구이가 좋고, 어떤 집은 주인아주머니의 입심과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이를 다 갖춘 집이 금상첨화겠지만, 실망스런 곳도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마산에 사는 사람들이 잘 가는 통술집이 좋은 곳일 것이다. 오래 들리고 맛본 경험을 토대로 그들 나름의 취향이나 계산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통술집들은 이름값을 하듯 대개들 괜찮게 알려진 곳들이다. 마산사람들은 외지사람더러 안주가 무료라고 해서 무조건 술값이 저렴하다는 것을 경계해야한다는 지적들도 하고 그런 집들을 꼽기도 한다. 세 명이 가면 돈 십만 원 나오는 건 여사라는 집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는 잘 알려진 집을 가야한다는 것이고 모를 경우 물어서 잘 골라가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서 언젠가 마산의 한 일간신문이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마산에서 최고로 꼽을 수 있는 통술집이 어디냐는 조사다. 그 신문은 SNS 상의 온라인 맛 집 그룹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그다지 신빙성을 부여할 수 없는 조사이고 그저 재미로 참조하라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지만, 마산의 통술집과 통술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특히 마산을 떠나 살고 있는 출향인들에게는 꽤 유익하고 재미있게 받아 들여졌지 않나 싶다.

    그 결과 공동 1위를 한 두 통술집이 선정됐다. 오동동의 한 집과 반월동의 한 집이 같은 표를 얻은 것이다. 그 신문사에서는 그 후 그 집들을 탐방한 기사도 게재하기도 했다. 어떤 출향인사 한 분은 그 기사를 보고 갈치구이를 잘 한다는 오동동의 그 집을 찾았는데, 마침 그날 갈치가 떨어져 못 마시고 나왔다고 한다 (그 중의 한 곳이 '유정통술'인데, 그 집은 갈치구이로 유명하다).

    마산에 1970년대부터 통술집이 처음 들어선 거리는 오동동과 합성동 골목이었지만, 지금은 신마산 옛 마산극장 부근에 통술거리가 생겨 그쪽으로 많이들 옮겨가거나, 새로 생겨난 집들이 많다. 오동동 통술거리가 그렇다고 상권이 죽은 것은 아니고 아직도 옛 명성을 이어가면서 십 수개의 통술집이 들어서 있다. 신마산에는 오동동보다 조금 많은 통술집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이 두곳 외에 반월동 등에도 통술집들이 있다.








                                                                                    (오동동 어느 통술집의 차려진 통술 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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