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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대야미로 가는 길, 경로석에 앉았다. 사당역 쯤 왔을까, 한 40대 쯤으로 보이는 남자 소경 한 분이 내 옆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편안한 자세로 앉았는 게 아니고 허리를 곧추 세운 상태에서 지팡이로 위치 등을 이리저리 가늠질하는 등 좀 부산스런 모습이어서 나로서는 좀 불편했다.
나이가 많이 드신 것으로 보이는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뭔가 먹거리 같은 것을 실은 캐리어를 끌고 열차 안을 지나다니면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그 할머니가 우리 좌석으로 오더니 소경 그 분 옆에 앉아있는 어떤 아주머니에게 애걸하는 조로 구걸을 한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눈을 감은 채 일절 대꾸를 하지 않는다. 할머니도 집요했다. 손으로 그 아주머니의 어깨를 두드리기까지 한다. 그래도 그 아주머니는 짐짓 모른 채 막무가내다. 결국 할머니는 포기를 하고 건너 칸으로 옮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 때 소경 그 분이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두 장을 꺼내더니 할머니에게 드리려는 듯 "할머니" 하고 불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작아서였던지 할머니는 그냥 캐리어를 끌고 저만치 가버리고 말았다. 소경 그 분은 게면쩍은 듯 돈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 내릴 차비를 한다.
소경 그 분의 그런 행동에 내 얼굴이 갑자기 화끈거려졌다. 몸도 불편한 분이 저러는데 나는 무언가하는 자책감에서다. 소경 그 분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았다.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참 편안한 표정이다.
열차가 서고 소경 그 분이 출입문으로 다가섰다. 내가 좀 뚫어지게 바라보는 게 읽혀졌던 것일까. 소경 그 분이 뒤로 돌아선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눈이 완전 멀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러길래 나를 보고 웃고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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