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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막 까 먹는 기구
    먹 거리 2019. 11. 28. 11:16

    어떤 물건이든 쓰임새, 즉 용도가 있다. 그러니까 용도없는 물건은 없다. 그런데 용도를 알 수없는 물건이 곁에 있으면 답답하다.

    수년 전부터 식탁에 놓여져있던 어떤 물건이 있었다. 종이 케이스에 담겨진 것이었는데, 언뜻 보기에 벤치 같았다. 그런데 앞 주둥이를 보니 벤치의 그것이 아니다. 게다가 중국산이라 그저 그런 것이려니 하고 별 거들떠 보지 않았다. 하지만 밥 먹을 때마다 눈에 들어 와 신경이 좀 거슬리기는 했다. 저게 언제 적부터, 어떻게해서 식탁에 놓여져있을까 하는 것에 더해 뭐에 쓰이는 것일까 하는.

    며칠 전에 효자동 주점에서 인근에서 화랑을 하시는 정 선생 등이랑 한 잔했다. 그 집은 가오리찜과 꼬막이 맛있다. 그걸 안주삼아 마셨는데, 꼬막은 일일이 까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막판까지도 많이 남았다. 주인장더러 그걸 싸 달라고 해 집으로 가져왔다.

    어제 아침에 냉장고에 넣어 둔 그 꼬막이 문득 생각나 까 먹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역시 까 먹기가 불편했다. 그 주점 아주머니는 숫가락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는데, 막상 해 보니 잘 안 된다. 귀찮아 까 먹기를 포기하려는데, 문득 그 '물건'이 눈에 들어 왔다. 벌어지는 앞 주둥이의 쇠로 된 걸개같이 생긴 사각진 부분을 좀 세밀히 들여다 보다 그걸 꼬막의 뒷 부분에 끼워 보았더니 딱 맞다. 그리고 손잡이를 눌렀더니 꼬막이 까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물건은 바로 꼬막 까 먹는 기구였던 것이다. 그에 더불어 연상되는 기억. 맞다. 그 때가 2012년 봄이었을 것이다.

    춘돈 선배랑 남도를 기행삼아 갔다 들린 보성에서 같이 꼬막을 먹다가 선배가 사준 것이고, 그걸로 꼬막을 까 먹다가 들고 와서는 그냥 식탁에 놓아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디 꼬막 먹을 일이 잘 있는가. 그냥 그대로 마냥 두어둔 것이니 그 용도를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떠 올려준 내 기억이 고마웠고, 꼬막이 새로 보였다.

    싸 온 꼬막을 다 까는데 불과 몇 분밖에 안 걸렸다. 깐 꼬막에 그런 사연이 담긴 것이어서인지 더 짭쪼롬하고 맛 있었다.

    어떤 물건이건 용도없는 것은 없다. 사람도 그렇지 아니한가. 天生我材必有用. 하늘이 사람을 내는 것은 다 쓰임새가 있는 것이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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