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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 3.15의거'와 옥희 누나
    추억 속으로 2020. 3. 15. 13:54

    그러고 보니 오늘이 '마산 3.15의거' 60주년이다. 이 사건을 나는 어릴 때 겪었다. 선거 부정을 규탄하기 위해 떨쳐나선 사람들이 관에 의해 죽고 다친 무서운 사건이라 이를 '추억'으로 생각하기는 좀 그렇다. 하지만 그때 내 나이 고작 9살, 철 들기 전이라 그때를 돌이켜 추억이라 해도 그리 욕 먹을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한 소녀가 생각난다. 그 당시 좀 살만한 집에는 '식모'를 뒀다. 지금으로 치면 가정부다. 우리 집에도 있었다. 나보다 서너 살 더 먹은, 경북 김천에서 소개를 통해 온 소녀였다. 우리 집에 처음 온 날, 옥희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많이 울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먼 객지의 생면부지의 낯선 집에 왔으니 얼마나 서럽고 두려웠겠는가. 어머니는 나더러 그 소녀를 누부야(누나)라 부르라고 했고 나는 그 누나를 많이 따랐다.

    3.15가 터진 후 마산 시내는 공포의 도시가 됐다. 우리 집 바로 앞 개울에 경찰이 기관총을 설치해 몇 날을 밤이면 쏴댔다. 우리들은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고, 밤이면 전기가 끊어진 방에서 부모님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라디오를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답에 옥희 누나가 말 없이 집을 나갔다. 2만 여명의 시민들이 가두 시위를 벌여 많은 사상자가 난 날이다. 그 날 밤 누나는 집에도 들어오질 않았다. 찾아볼 수도 없었다. 걱정 속에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다음 날 배달된 동아일보에 그 전날 대규모 시위 소식이 큰 사진과 함께 일면 톱 기사로 실렸다. 우리 집에서 멀지않은 남성동 파출소가 시민들의 투석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파출소 앞은 하얀 종이로 뒤덮었다. 파출소 서류들이다. 난장판이 된 그 파출소 앞에서 많은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는 사진이었다.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신다. "어, 얘 옥희 아이가?" 그러시면서 신문 사진을 어머니에게 보여 주셨다. 어머니도 그 사진을 보시고는"맞네예, 옥희 맞네예" 하셨다. 파출소 앞 시위대 맨 앞 줄에 옥희 누나가 플래카드를 함께 들고 비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밤 늦게 옥희 누나는 집으로 왔다. 안위를 걱정하던 부모님은 반가운 마음과 함께 질책을 했지만, 누나는 별 말이 없었다.

    누나가 그 후 얼마를 더 우리 집에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다만 어느 날 학교엘 갔다 오니 누나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물었더니, 그냥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갔다고만 하셨다. 그 얼마 후 우리는 자산동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매년 3.15 날이 오면 그 누나가 생각난다. 누나는 왜 그날 저녁 시위대에 나갔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몇 년전인가, 동아일보의 그 사진이 생각나 그날짜 신문을 구해보려 했지만, 구해지지가 않았다. (사진은 마산의 장효익 선배님이 올린 걸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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