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西村 길을 걷다추억 속으로 2020. 1. 14. 21:24
친구들과 오늘 아침 그 시간쯤부터 서울 거리를 걸었다. 그 시간쯤이란 문재인이 무슨 회견인가를 할 무렵이다. 우리들은 그 회견이 보기 싫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아침부터 서울 거리를 걸은 것은, 문의 회견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감의 표현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다만 우리들 저항감의 수준이 고작 이런 것이려니 하는 自嘲는 서로 암묵적으로들 있었을 것이다.
많이 걸었다. 경복궁 역에서 만나 체부동, 옥인동, 청운동 등 서촌과 삼청동, 가회동의 북촌, 그리고 종로, 청계천을 지나 을지로도 걸었다. 이들 지역의 길과 골목은 우리 모두들 저마다 옛 추억이 서린 곳이다. 서촌, 북촌으로 말하자면 친구 셋은 마산중학을 나와 그 어린 나이에 청운의 꿈을 품고 유학을 와 경기와 경복고를 다녔던 곳이다. 그러니 이쪽 지역은 그 친구들이 하숙을 하고 학교를 다녔던 길과 골목들이다. 경기는 강남으로 이전했지만, 경복은 아직 학교가 옛 그대로 남아있어 그 학교에도 들렀다.
그 친구들 중 하나는 옛 처가가 가회동이라, 80년대 초 신혼 때부터 아예 가회동에 눌러 살았었다. 지금은 남의 집이 돼버린 마당 깊었던 그 친구의 옛집 앞에서 우리들은 좀 오래 머물렀고, 친구의 옛 처갓집 앞에서는 서로들 기억을 소환해내 니가 맞니, 내가 맞니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나 또한 북촌의 추억이 많다. 1977년 첫 직장을 잡았을 때 하숙을 이 동네에서 했고, 하숙집 곁에서 방 하나를 얻어 결혼 전까지 자취생활을 한 곳도 가회동이다. 1990년대 현직에 있을 때는 출입처가 이 동네였다. 총리실 2년, 청와대 4년 해서 6년을 이 동네에서 삐댔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겠는가.
그 동네를 돌고 삼청동 순대국 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쯤 해서는 기분들이 상당히 업 돼 있어 정치를 포함해 세상 돌아가는 얘기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근데 을지로 친구 아들이 하는 커피숍에서 그게 깨졌다. 친구 하나가 스마트폰을 보고 문 회견 내용을 꺼내는 바람에 그게 깨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들은 생각들이 상당히 일치했다는 점이다. 차이가 좀 있었던 것은 앞으로의 전망에 관한 것인데, 나는 절망적이라고 했고, 한 친구는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보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정치 얘기는 충무로의 '루이스'라는, 영국인이 하는 빈티지 영국 스타일의 카페에 들어서면서부터 서로 그러기로 약속이나 한듯 입을 다물었다.'추억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산 3.15의거'와 옥희 누나 (0) 2020.03.15 겨울 설악 '물맛' (0) 2020.02.17 1969년 馬山高 3학년 1반 (0) 2020.01.02 汶 山 (0) 2019.11.23 애바 가드너(Ava Gardner) in 1954 (0) 2019.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