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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다시 본 '覇王別姬'볼 거 리 2020. 5. 15. 09:16
엊저녁 대한극장에서 본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영화는 보기 전에 대개 선입관이라는 게 있다. 대충의 스토리라든가 그에 따른 관점을 갖고 영화를 본다. '패왕별회'는 1993년에 봤으니, 그 선입관이 더 강했다. 그런데 그 때 본 것으로 가졌던 그 선입관이 많이 빗나갔다. 1993년에는 무척 재미있게 봤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영화가 중국 전통의 '경극(京劇)'을 배경으로 동성애에 따른 주인공들의 사랑과 배신에 얽혀진 갈등과 고뇌가 주제일 것이라는 선입관이었는데 어제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동성애도 드문드문 느껴졌으나, 예전에 봤을 때 처럼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차라리 중국의 지난한 근. 현대사를 거쳐오면서 수난 속에 그 명맥을 이어 온 '경극'을 부각시킨 영화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보는 내내 들었다. 물론 이건 나의 생각과 느낌인데, 결국 나의 생각과 이런 저런 관점이 그동안 많이 변한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마디로 젊었을 적과 늘그막에 보는 것이 그만큼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중국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홍위병들에 의해 '경극'과 주인공들이 인민재판 식의 공개비판과 자아비판을 받는 장면들에서는 뜬금없이 문재인 정권의 문빠들과 '대깨문'들의 그악스러움이 연상됐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곁에 있는 선영 선배가 뭐하는 짓인가고 좀 놀랐을 것이다.
영화는 1993년 원작을 디지털로 재 복원(re-remastered)한 것으로 생각하고 봤는데, 화면이 전반적으로 이상스러울만치 어두워 보는 내내 불편했다. '디 오리지널'이라면서 러닝 타임이 원작보다 17분 정도 늘어 3시간 10분이라고 선전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2시간 4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관람객은 선영 선배와 나, 그리고 다른 두 명의 관객을 포함해 단 4명이었다. 썰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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