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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의 존대어는 연세다. 당연히 어머니의 그것도 연세라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이'로 적고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대구에서 어머니가 내게 물으셨다. "철이 니 올해 몇이고?" "예, 70입니더."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물음과 대답이었다. 그 다음부터가 좀 이상해졌다. 어머니가 툭 던지는 말씀. "나는 올해 팔십다섯이다." 무슨 말씀인가 싶어 팔"십다섯예?" 하고 되물었다. 어머니는 "그래, 나는 올해 팔십다섯이다 와?" 하신다. 무슨 뜬금없는 말씀인가 싶어 눈을 좀 홀기며 내가 한 말을 하려하자, 곁에 있던 누이동생이 내 팔을 잡고는 나에게 눈치를 보낸다.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하는 말. "맞다 옴마는 올해 팔십다섯 맞다." 어머니의 그 말씀에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팔십다섯예? 그라모 그건 연세가 아이고 나입니더."
어머니 연세는 올해 아흔하고도 둘이다. 어머니가 나에게 나의 나이를 물었고 내가 칠십이라고 대답을 했을 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어무이 연세 구십 둘이신데, 나도 어무이 쯤 됐으면 좋겠심미더."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나도 나이가 빨리 들었으면 좋겠다는 , 어머니가 들으시기에 불효막심한 말 일 수도 있다.
나로서는 익스큐즈가 있다. 속절없이 늙어가시는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런 내 심중을 어머니는 간파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어머니가 나에게 '선수' 치시듯 "나는 올해 팔십다섯이다"고 말씀하신 것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가벼운 치매를 앓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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