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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雨 傘 三 題
    세상사는 이야기 2020. 8. 14. 18:49

    I. 見物生心

     

    비 오는 저녁 지하철.

    이어폰 음악 듣는다고 미적대다 전철 안으로 떠밀리듯이 들어왔다.

    퇴근시간이라 자리가 있을리 없다.

    자리가 없을 때 문옆에 서는 게 편안하다.

    기댈 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차가 신형이라 그런지 등받이가 낮다.

    등을 기대면 앉은 사람의 머리 쪽으로 기우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기대선 곳에 우산이 놓여있다. 큰 우산이다.

    자리에는 젊은 여자가 앉아있는데, 아마도 그 여자 것으로 보인다.

    그 여자 앞에 신사복 차림의, 남자가 서 있다.

    교대역.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린다.

    그 여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내린다. 우산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앞에 서있던 남자가 잽싸게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아무래도 내가 나이께나 든 것 처럼 보여서인가.

    그 남자 양반은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만지작 거린다.

    그리고는 간혹 곁에 놓여있는 우산을 한번씩 쳐다본다.

    그 남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우산이 내려버린 여자의 것인줄을.

    열차는 계속 달리고 내릴 곳은 다와 가는데 낭패감이 든다.

    여자가 놓고 간 이 우산을 어찌할 것인가.

    나는 우산이 없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고,

    주인없는 우산이 곁에 있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다음이 당산역이다. 갈등은 계속 되고 있다.

    그 순간, 그 남자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우산을 든다.

    그리고 자기 가랭이 사이로 밀어 눕혀 놓는다.

    마치 자기 우산인 것 처럼.

    나는 그날 당산동에서 버스 타러가면서 비를 흠뻑 맞았다.

     

     

     

    II. 三人成虎

     

    버스에 자리가 많다. 나는 맨 뒷좌석 바로 앞에 있는 자리를 좋아한다.

    맨 뒷좌석 가운데에 어떤 젊은 남자가 혼자 앉아있다.

    그 쪽으로 걸어가면서 보니, 하차문 옆 좌석에 우산이 하나 놓여있다.

    누가 놓고 내린 것이다.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나는 우산이 있다. 누가 놓고 내린 것이건 별 신경이 안 쓰인다.

    다음 정류장, 어떤 젊은 처녀가 버스에 올랐다.

    사뿐 사뿐 걸어오더니, 우산이 놓여있는 좌석 앞에 멈춰선다.

    그리고는 주변을 한 두번 둘러보고는 그 자리에 앉는다.

    그 처녀는 물론 우산을 들었다. 

    그 처녀, 자리에 앉더니 옆에 놓인 우산을 들고 본다.

    그 순간, 맨 뒤에 앉아있던 그 양반이 쏜살같이 일어나더니

    그 자리로 가서는 우산을 뺏어든다. 순식간의 일이다.

    이 거 내 우산이요, 내 우산인데 어찌...

    남자의 말은 굵은 톤이었다.

    그 순간 버스에 있던 승객의 시선이 일제히 그 처녀에게 몰렸다.

    그 처녀는 다음 정류장에서 도망치듯이 내려 버렸다.

    그 남자의 심산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어쨌든 우산 하나가 멀쩡한 처녀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여자에게 우산이 둘 필요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III. 無 題

     

    북한산이 물 천지다. 연일 내린 비에 산이 온통 젖었다.

    토요일에도 비가 오락가락 한다.

    물론 비 준비를 단단히 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비옷에다 우산까지 챙겼다.

    챙겨나온 우산들은,

    배낭 옆 주머니에 넣으면 쏙 들어갈 정도의 조그만 것들이다.

    그런데 한 친구가 유독 길고 큰 우산을 들고 나왔다.

    스틱 대용으로도 쓸만한 크기의 우산이다. 이른바 장(長)우산이다. 

    모자에 스카프를 걸쳐 쓰고는 우산을 들고 엉기적거리는 모습이 좀 우습다.

    서로들 오랜 만이라 조잘거리며 산을 올랐다.

    탕춘대 길을 걸어 올라 첫 쉼터. 옛 매표소 부근이다.

    뭔 얘기들이 그리 많은가 주고받는 얘기는 끝이 없다.

    문득 나무 아래 세워놓은 그 친구의 길다란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는 세워놓은 우산을 뒤고 하고는 얘기에 정신이 없다.

    저 우산이 온전할까. 온전할까.

    그 때까지 비는 오질 않고 있었다.

    두번 째 쉬어가는 곳은 포금정사터. 그 곳에서 빗방울이 어른거렸다.  

    우산을 꺼내 쓰야하나 말아야 하나.

    배낭을 들고 주춤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아, 내 우산!" 한다. 그 친구, 길다란 우산을 갖고 온 친구.

    우산을 아래 첫 쉼터에 그냥 두고 온 것이다.

    그 곳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두들 포기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아침에 산에 오느라 새로 샀다는 것인데,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게 영 억울한 모양이다.

    누구든 우산을 잘 잃어 버린다. 그 게 대수는 아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계속 씨부렁거린다. 그렇게 아까운 모양이다.

    산을 올라 가면서도 그 얘기, 정상에서 뭘 좀 먹을 때도 그 소리,

    내려오면서도 그 얘기다. 내 우산 오데로 갔을까.

    구기동에 '삼각산'에서의 뒷풀이.

    어쩌다가 그런 화제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돈에 관한 얘기다.

    그 친구는 자기 잘 나갈 때 얘기에 신이 올랐다.

    우리 아부지 기분이 좀 언짢다고 느껴지면 그 때마다 돈 보따리릉 안겼지 운운...

    누군가 한마디.

    일마, 그리 돈이 많은데,

    그깟 우산 하나 잃어버렸다고 종일 우산을 입에 달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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