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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雨中의 여인'
    추억 속으로 2020. 10. 13. 13:38

    어릴 적부터 유행가를 많이 듣고 자랐다. 아버지가 노래를 참 좋아하셨다. 1960년대 초반 당시로는 귀한 제니스 전축이 집에 있었다. 아버지는 서성동 주차장에서 퇴근해 집에 오시면 그 전축을 거의 끼고 살다시피 했다. 심연옥의 ‘한강’을 참 좋아하셨고 그 밖에 한정무의 '꿈에 본 내 고향' 등 향수를 주제로 한 노래들을 많이 들으셨기 때문에 내 귀에도 이런 노래들은 지금껏 아주 익숙하다.

     

    그 당시는 동네마다 ‘노래자랑 대회’가 많이 열렸다. 중학교에 다니던 지산동 살 적에는 무학국민학교에서 많이 열렸다. 그 학교 뒷문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았기에 자주 보러갔었다. 어느 날인 가에 열린 노래자랑 대회에 우리 동네 살던 학춘이라는 얘가 나왔다. 또래 동네 동무들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대중가요를 잘 알고있었구나 하는 성숙함, 그리고 그걸 과시하고자 하는 대담성에 놀랐다. 학춘이가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반주가 나오는데, 그 노래가 바로 이 노래 ‘우중의 여인’이었다. 학춘이는 그날 이 노래로 1등을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1970년인가, 여름방학을 맞아 마산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그 학춘이를 만났다. 묘령의 이쁜 여자와 함께 있었다. 그 때 학춘이는 나는 잘 몰랐지만, 대중가수로 데뷔해 한참 스타덤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학춘이는 이쁜 그 여자와 식당차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나와 조우했는데, 살짝 취기어린 얼굴로 반갑게 대해줬고, 그 여자와도 인사를 시켜 주었다. 그 후 학춘이의 몇몇 노래가 히트했고, 학춘이는 ‘마산이 낳은 일류가수’로 명성을 날리는듯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인기가 시들해졌고 소식마저 뚝 끊겼다.

     

    학춘이의 소식을 안 건 몇년 전이다. 오동동 월남다리 아래 된장 잘 하는 제일식당 주인 아저씨가 학춘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학춘이는 이 세상에 없지요. 아저씨는 그 한 마디만 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학춘이 형이 외교관 출신의 어느 어느 분이라는 것도 얘기했지만, 그것 역시 그 분에게 누가 될 것이라면서 더 이상을 말을 하지 않았다.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나는 ‘우중의 여인,’ 이 노래만 들으면 무학국민학교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학춘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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