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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Misery'의 'Royal Typewriter'
    컬 렉 션 2020. 11. 13. 14:04

    영화를 보면서도 직업병인지 뭔지가 도지는 경향이 있다. 타이프라이터 등 문방도구가 나오는 장면을 유심히, 거의 관찰적으로 본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의 기억이 유독 오래 간다.

     

    '미저리(Misery)'라는 영화도 그 중의 하나다. 윌크스로 분한 캐시 베이츠(Kathy Bates)의 광기어린 연기를 절로 떠 올리게 하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영화다. 이 영화에서 좋아하는 작가를 강제로 '사육'시키다시피 하면서 자기 의중대로 소설을 쓰게 하려는 윌크스의 편집증의 도구로 등장하는 게 바로 타이프라이터다.

     

     

    윌크스는 작가인 폴던(James Caan)으로 하여금 자기가 바라는대로 소설을 쓰게하기 위해 서재를 가꾸고 타자기도 장만해 놓는다. '로열(Royal)' 타자기였는데, 보기에 1900년대 초에 출시된 모델이다. 폴던은 그 타자기 앞에서 윌크스가 원하는 소설을 쓴다.

     

    아무리 강제적으로 '사육' 당하고 있는 처지의 폴던이었지만, 나로서는 영화 내용과 관계없이 투심(妬心)이 일었다. 고약한 질투심이랄까, 아무튼 서재의 풍경이라든가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타자기 앞에 앉았을 때 글쓰기에 몰두하던 폴던의 표정 등이 그랬다. 지금도 작가들에겐 원고를 끝냈을 때 어떤 '의식'이 있을 것이지만, 저 영화 내용의 그 시절, 작가들은 탈고를 하면 타자기를 번쩍 들어올리며 자축하고 마무리하는 나름의 통과 의례가 있었던 모양이다.

     

    저 영화에서 폴던도 그런다. 자기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글을 끝냈을 때 폴던은 그 무거운 로열 타자기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이 영화에서 나는 제일 좋아한다. 뭔가 폴던의 그 기분상태를 함께 공유하고픈 심정이었을까.

     

    그 둔중한 로열 타자기가 끝내 폴던으로 하여금 윌크스를 죽이는 흉기로 변하게 하는 건 스테판 킹(Stephen King) 소설 만이 주는 극적인 아이러니다. 폴던에게는 로열 타자기가 극한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글쓰기 도구였지만, 그 상황을 끝내게 하는 도구 역할까지를 함께 하게하는 점에서 그렇다.

     

    나에게도 저 영화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한 로열 타자기가 한 대 있다. '미저리' 이 영화를 본 후 이베이(eBay)에서 구한 것이다. 모델명은 'Royal 10 Glass Sides Typewriter.' 타자기 양쪽 사이드가 유리판으로 되어 있어 'glass sides'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용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껏 사용해본 적은 없다. 활자가 두 개 이탈됐고 리본도 낡았다. 리본은 지금은 구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이 타자기는 지금 그저 장식품 비스무리하게 테이블에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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