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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와 그의 사진들사람 2021. 1. 4. 14:17
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
알 만한 사람, 특히 사진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미국의 세계적인 여류 사진작가다.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몇 장의 사진을 들이대 보자. 대부분 찍은 사람은 잘 몰라도 “아, 이 사진!”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비틀즈의 존 레넌. 1980년 12월, 자기 집 침대에서 옷을 모두 벗은 채 그의 연인 오노 요코 옆에 누워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사진. 검은 옷으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요코와 일란성 쌍둥이 같은 모습의 레넌은 이 사진을 찍은 후 네 시간 뒤 집 앞에서 한 정신병자의 총격으로 피살된다. 이 사진은 레넌의 마지막 사진이자 그의 운명을 예고한 사진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다음은 미국의 여배우 데미 무어. 1991년 만삭의 무어가 옷을 벗은 채 레보비츠의 카메라 앞에 섰다. 이 사진은 유명인 만삭 사진의 시초가 됐고, 여성의 몸과 모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 1997년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디카프리오를 레보비츠가 그의 렌즈 안으로 소환했다. 백조를 어깨에 맨 디카프리오는, 흑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 사진 한 장으로 영화 속과는 다른 형언할 수 없는 숭고미를 발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진들을 레보비츠(71)가 찍었다. 이 사진들은 ‘전설’이 됐고, 레보비츠도 2009년 미 의회도서관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선정한 것처럼 사진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상적인 세계 유명인들의 사진 대부분을 애니 레보비츠가 찍었다. 니콜 키드먼, 브래드 피트, 데미 무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롤링 스톤즈 등 헐리웃 스타와 뮤지션들은 물론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엘리자베스 2세, 넬슨 만델라를 포함한 세계적 정치인 등 당대의 가장 잘 알려진 유명 인사들을 인물의 특색을 살려 찍은 작가가 레보비츠다.
그러나 그런 사진만이 그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조카의 탄생과 성장, 사랑하는 동생들, 부모와의 소중한 일상과 아버지의 죽음 등 가족과 주변의 사진을 포함해 사라예보 등에서의 분쟁과 살육현장을 담은 걸출한 르포 사진들도 있다. 또 그녀의 스승이자 연인이자 ‘영혼의 친구’라는, 미국의 反문화운동가 수전 손탁(Susan Sontag)과의 15년간에 걸친 교유를 담은 기록물적인 사진도 있다. 여기에는 손탁의 2004년 마지막 죽어가는 모습을 한 장 한 장 담은 스냅사진도 있다.
레보비츠의 사진은 이런 점에서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가 없다. “나는 그저 나의 시간을 찍는다”라든가, “최고의 사진을 찍기 위해선 그 곳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한 그녀의 말은, 그녀가 사진을 찍는 순간과 피사체, 그리고 그 주변에 얼마나 관심을 집중하고 몰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사체에 애정을 가지고 그 본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함께 동화되고 흡수된다는 것이다.
피사체와 동화된 그 속에서 레보비츠는 자신과 피사체의 시간을 찍는다. 이는 피사체와의 소통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만삭의 배를 부둥켜안은 데미 무어나, 다 죽어가는 백조를 안은 디카프리오 등 스타와 유명인사의 그로테스크한 모습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레보비츠의 인물사진은 이런 것이다. 아무리 개성이 강한 유명인이라도 그녀의 파인더 안에서는 순종자가 되는 ‘마력’을 그녀는 부릴 줄 안다.
레보비츠는 지난 반세기 가까이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찍었지만, 이들 피사체 때문에 그녀가 최고의 사진가가 된 것은 아니다. 그의 사진 안에는 사진을 넘어서는 이러한 특별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진가도 생각하지 못했던 피사체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넘치는 아이디어, 열정, 그리고 인생이 담겨있다.
레보비츠와 작업을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진실 된 마음에 대한 찬사일 것이고, 그 마음에 답해 그녀 앞에서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 자신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이런 레보비츠의 근황이 요즘들어 뜸하다. 올해로 71세이니 아직은 활동을 못할 정도의 나이는 아닌데도그녀의 작품활동에 대한 소식은 별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지난 해 6월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에서 레보비츠는 자신이 일종의 '연예인(celebrity)'로 보여지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여전히 수잔 손탁이 자신과의 가장 훌륭한 '대화자(wonderful talker)라며 그녀를 그리워했다.
국내에서도 레보비츠에 대한 인기는 높다. 지난 2013년 겨울과 봄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된 그녀의 사진전에는 4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았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지난 해 4월 재개봉된 레보비츠와 그녀의 사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본 삶'이 그나마 레보비츠와 그녀의 사진을 기다리는 국내 팬들에게는 가뭄 속의 비같은 것이었다.
2020년 6월 FT와의 인터뷰에 소개된 레보비츠의 캐리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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