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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Romain Gary), 혹은 에밀 아자르(Emile Ajar)사람 2021. 3. 30. 10:53
'로맹 가리(Romain Gary)'라는 좀 우스꽝스런 이름을 안지는 얼마 안된다. 과문한 탓이다. 여기저기서 로맹 가리, 로맹 가리 하길래 도대체 그가 누구길래 저러는가 생각했지만, 그저 그러려니 했다.
얼마 전 넷플릭스 영화 '새벽의 약속'이라는 걸 보는데, 거기서도 로맹 가리다. 복잡한 생각에 엮이기 싫어 보다가 관뒀다.
그런데 그저께 영화 '자기 앞의 생'을 우연히 보다 그 언저리에 또 로맹 가리가 또 나오길래 결국 호기심에 찾아보다 깜짝 놀랐다. 그 로맹 가리가 바로 에밀 아자르(Emile Ajar)였던 것이다.
'자기 앞의 생'이라는 영화도 그렇다. 제목이 분명 기억에 익은 것인데 가물가물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에밀 아자르와 연결하니 기억이 분명해졌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The Life Ahead).> 이 소설은 봤다. 분명히 봤다.
1975년 경인가 파주 광탄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서울 출장을 나와 종로서적에서 사서 본 소설이다. 왜 그 소설에 꽂혔을까.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1975년 프랑스 콩쿠르상 수상작이었고, 그 기사를 신문에서 봤기 때문이다.
40년도 훨씬 지난 시절에 본 '자기 앞의 생'에 대한 기억은 거의 전무하다. 1975년을 전후해 전역 등 나에게 닥쳐진 이런저런 번잡스런 일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까맣게 잊어먹고 있던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로맹 가리와 함께 이즈음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프랑스 공군장교 시절의 로맹 가리
로맹 가리라는 인물이 참 흥미롭다. 세 개의 이름을 가졌다.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으로 본명은 로만 카체프(Roman Kacew)다. 자전 소설 <새벽의 약속(Promise at Dawn)>에 나타나듯, 14살 때 유대인 탄압을 피해 엄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후 이름을 로맹 가리로 바꾼다. 그 과정에서 그는 2차대전 때 영국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고, 프랑스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가 된다. 종전 후에는 프랑스 외교관으로 UN과 미국에서 근무한다. 그러다 1974년 에밀 아자르로 다시 이름을 바꾼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
미국 생활 중 로맹 가리는 할리우드 여배우 진 세버그(Jean Seberg; 1938-1979)를 만나 사랑에 빠져 동거를 하면서 외교관 직을 사임하고 영화계에 뛰어든다. 1963년 둘을 결혼하지만, 진 세버그의 흑인인권운동 참여로 많은 갈등을 겪는 등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 끝에 1968년 이혼한다.
로맹 가리는 뛰어난 글재주를 타고났다. 1956년 '하늘의 뿌리'로 콩쿠르 상을 수상했고, 개명한 이듬해인 1975년 '자기 앞의 생'으로 다시 콩쿠르 상을 수상했는데, 그러니까 한 개인이 본명과 가명으로 콩쿠르 상을 두번 수상한 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물론 1975년 수상 당시엔 그의 조카를 에밀 아자르로 행세케 해 상을 받았다.
1980년 에밀 아자르, 아니 로맹 가리는 파리 자택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극적인 죽음이다. 그가 사랑했던 진 세버그가 1979년 파리 근교에서 자살한 그 이듬 해다. 그가 죽고나서 유작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 공개됨으로써 로맹 가리가 바로 에밀 아자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어쩌다 본 영화 '자기 앞의 생' 한편으로 한 이틀 호기심으로 즐겁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노년의 소피아 로렌도 만났고, 40여년 전 만났던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 가리도 다시 보았다.
그의 인생역정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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