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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흰 당나귀'에서
    사람 2021. 4. 18. 15:53

    어제 서촌 누하동의 '백석, 흰 당나귀.'

    북한산 산행 후 귀갓길에 들렀더니 뵙고 싶었던 유재원 교수님이 거기 계셨다. 우연히 만난 것이다.

    평소 한번 만나뵙고 싶었던 분이었는데, 정작 그 분을 만나서는 그 분을 통해 안부가 궁금하던 몇 분들과도 연락이 닿았다는 게 신기했다. 서강대학에 계셨던 손호철 교수와는 정확히 44년 만일 것이다.

                                                                    손호철 교수(경향신문 사진)

     

    1977년 그 분 합동통신사에 계실 때 종로3가 뒷골목 대포집에서 보고 처음인 것이다. 그 때 본 후 얼마있다 텍사스 오스틴대학으로 유학을 갔고, 학위를 한 후 한국으로 와 서강대에 재직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통화를 하는데, 나를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기에 그게 당연할 것이다.

                                                              채희완 교수(국제신문 사진)

    또 한 분은 부산대학에 계셨던, 탈춤하던 채희완 교수. 그 분 뵌지도 40년이 넘었다. 1978년인가,

    가회동 하숙집에서 회사에 출근하려 걸어내려 오다 비원 앞에서 우연히 만났더니,

    다짜고짜 나를 동소문동 어느 집으로 이끌었다. 구질구질하게 회사는 왜 다니냐는 것이다.

    그 집에 노래하던 김민기, 대금하던 김영동 등이 넓직한 대청마루에 앉아 뭔가를 도모하고 있었다.

    기억하기로 무슨 유랑극단 같은 것을 만들어보자던 계획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더러도 함께 하자하는 것이었다. 영문도 잘 모른 채 한 이틀 간 회사에 나가질 않고 그 집을 갔었다.

    하지만 그 후 나는 다시 회사로 나갔다. 그리고 어제 통화를 한 것이다.

    또 한 분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조소과를 나와 조각을 하시던 안성복이라분으로, 그리스에 오래 계셨었기에 유 교수에게 물었더니 잘 아신다고 했다. 하지만 Y 교수가 갖고있는 그 분 옛 휴대폰 전화는 011인가 017이었기에 통화가 될 수 없었다. 이리 저리 다른 아시는 분께 알아보았으나, 다들 모른다고 했다.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어떤 분이 계신는데 그 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더러 찾게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안성복 선생과는 예전 언론재단 일할 때 같이 했었다. 유 교수와 그 분 얘기를 나누는 중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미혼으로 혼자 사시면서 상당히 깔끔하고 까칠하시 분이었다는 것. 안 선생 그 분도 이제 80 나이 쯤 됐을 것이다.

     

    나는 키핑해 놓은 압술루트 보드카를 마셨고 유 교수는 맥주를 마셨다. 유 교수는 니코스 카잔차스키 전문가다. 내가 그 분께 관심을 갖게된 것은, 재작년인가, 그 분이 원전을 기반으로 한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해 펴냈기 때문이다. 이즈음에는 카잔차스키의 <영혼의 자서전> 번역을 탈고해 출판사로 넘겨 곧 출간될 예정으로 있다. 유 교수로부터 그와 관련해서도 많은 맛깔나는 얘기를 들었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 오르탕스 등으로 얘기를 나누다보니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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