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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이른 아침, 누군가 우리 아파트 현관문 고리에
상추, 고추, 호박 등 푸성귀를 정성스럽게 봉지에 담아 살짝 걸어놓고 가시는 분이 있다.
한 두번은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이어지니까 대체 어떤 고마운 분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어제는 깨끗히 손질한 많은 양의 대파를 걸어놓더니 오늘은 싱싱한 고추다.
아내로부터 그 분이 누구신지 대략 얘기는 들었다. 아파트 아래 층 아주머니라고 했다.
아주머니라니까, 여자는 여자들끼리 얘기하라며 나는 뒤로 빠지려 했다.
그랬더니 아내 하는 말이 그 집 바깥양반이 나를 잘 안다고 한다. 누굴까?
오늘 그 바깥양반 분이 누군지 알게됐다.
1997년,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 분양당시 시공업체의 사기사건이 있었다.
큰 사건이었다. 분양받은 처지에서는 입주여부를 알 수 없고 막막했다.
그 때 우리들은 비상대책위를 구성했다. 중앙일보 부동산담당 기자가
큰 역할을 했고, 나도 미력하나마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아래 층 양반은 그 때 알게된 사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그냥 눈인사만 주고받는다.
그런데 그 분은 나를 기억했고, 우리 집을 기억하고는 텃밭에서 기른 작물을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아내는 얼마 전 스카프 몇 장을 그 집 현관문 고리에 걸었다고 한다.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이웃사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정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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