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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千祥炳시인의 '秋夕'
    컬 렉 션 2021. 9. 21. 14:01

    '天生시인' 천상병의 시들은 맑고 순수하고 가식이 없다.

    물론 오묘하면서 깊은 뜻은 담고 있지만, 글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평생을 돈 천원과 막걸리 한 잔으로 족한 인생이었다.

    그러니 그의 삶 또한 보기에 심각하지 않고 단순했고, 이런 삶의 궤적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그의 詩들에 절절히 녹아있다.

    그런 천상병에게도 가을 날 맞이하는 추석은 그리 단순한 날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추석에 관한 천상병의 詩로는, '불혹(不惑)의 추석'이라는 게 있다.

    ",,,

    혼자의 추석이

    오늘만이 아니건마는

    더 쓸쓸한 샤유는 고칠 수 없는 병 때문이다.

    막걸리 한 잔,

    빈촌 막바지 대폿집

    찌그러진 상 위에 놓고,

    어버이의 제사를 지낸다.

    다 지내고

    음복을 하고

    나이 사십에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간다."

    천상병 詩들 가운데 그나마 꼽을 수 있는 좀 어두운 느낌의 글이다.

    '불혹의 추석'이니, 천상병 나이 마흔살 때 쓴 글이다.

    그 무렵의 천상병은 제 정신이 아니었을 시기다.

    동백림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정보기관에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릴 때다.

    물론 평생의 반려가 된 목순옥 여사와도 결혼하기 전이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대목에서 자신에 피폐해진 그런 처지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이 묻어난다.

    이 詩 말고 나이 마흔 때 쓴 또 다른 詩, '少陵調(70년 秋日에)'도 아마 추석 무렵에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 詩 또한 어둡고 쓸쓸하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少陵)를 빌어

    자신의 심경을 읊은 글로, 원제목 보다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이라는 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 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 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추석을 맞아 부모산소도 옳게 못 들여다보고, 형제들도 못 보는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詩다.

    그 이유로 돈, 그러니까 여비 문제를 들고있는 것이 과연 천상병 답기도 하다.

    추석과 연관된 천상병의 이 두 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시들을 통해 천상병이 뭔가 어떤 '결심'을 하고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불혹의 추석' 마지막 구절, "나이 사십에/나는 비로소/나의 길을 찾아간다."가

    그렇고, '小陵調'의 마지막 부분 "생각느니, 아,/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도 그렇다.

    하기야 천상병은 나이 40세인 1970년을 기점으로 그 전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산다.

    목순옥 여사를 맞아 혼인을 했고, 목 여사가 인사동에 '歸天'을 열었을 때,

    수락산 동네와 '귀천'을 매일 오가며 거의 지상에서의 소풍같은 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그의 주옥같은 시들 또한 거의 대부분 1970년 이후에 쓰여진 것이다.

    추석날 오후, 우연히 접한 천상병 시인의 시들이 새삼 고향과 부모형제들을 그립게 한다.

    천상병 시인이 불혹의 나이에 비로소 찾은 길이 나에겐 쓸쓸함과 어떤 막연감을 안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등에 대한.

    아내는 명절 음식 장만의 고단함인지 소파에 길게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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